박은봉, “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 서유재, 2023
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이라니, 우선 제목부터 독특하다. 동양에서 역사는 예로부터 교훈을 주는 거울(鑑)이었다. 과거 시험에서도 반드시 과거(過去)를 예로 들어 작금(昨今)의 대책(對策)을 내놓게 했다. 서양에서도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神)들을 빗대어 인간에게 삶의 지혜와 교훈을 주었다. 그런데 과거가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줄 수 있다니, 이해될 듯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박은봉 작가는 “한국사 편지”라는 책으로 출판 관련 문화상을 수상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필력을 인정받은 분이다. 책의 날개 부분에서 스스로 말씀하신 것처럼, 뒤늦게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여 석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관심 분야에 열정을 쏟으시기도 한다. 미루어 짐작컨대, 이 책도 심리학 공부를 하시면서 구상하신 것은 아닐지.
책에는 네 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데, 다윈과 안데르센처럼 누구나 알 법한 인물부터 폴 칼라니티, 진수옥, 일진 여학생들처럼 별도로 관심을 가진 사람만이 알 만한 인물들도 있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이고, 지금보다 먼 과거라는 일종의 편견 때문인지, 나는 다윈과 안데르센의 이야기가 흥미로왔다. 유시민 작가가 “청춘의 독서”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윈은 “종의 기원”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견해를 제시한 인물이다. 총 8권의 저서와 55편의 논문을 쓴 위대한 학자가 실제로는 알 수 없는 병에 사로잡혀 복통과 구토, 어지럼증, 심장 두근거림 등으로 고통에 시달리면서 하루 한두 시간 펜을 들어 저술하였다는 기막힌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더 놀라운 것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70여 년의 삶을 이어갔다는 사실이다. 그 원인으로 다윈이 매일 기록한 ‘건강 일기’를 꼽는다. 여러 생물종을 관찰하듯이 자신을 ‘관찰’하면서 쓴 일기다. 관찰은 주관적이기보다 객관적인 행위이다. 삶도 객관적으로 보면, 주관적으로 볼 때와 달리 냉철하고 여유롭게 볼 수 있다. 주관적일 때 우리는 자신과 타협하는 경우가 더 많다.
다윈이 병 속에서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병을 긍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다윈의 자서전에서 “병은 사교와 오락으로 집중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아 주었다. 비록 병 때문에 내 인생에서 몇 년이 사라지긴 했지만.”이라는 대목을 인용하여 다윈이 자신의 삶을 행복해했다고 말한다. 부정맥이 있어서 6년째 약을 먹고 있는 나로서는 이 부분이 크게 공감되었다. 부정맥 때문에 술을 끊고, 좋아하는 커피도 하루 두 잔 이상 마시지 않는 습관을 들였기 때문이다. 비록 술친구와 멀어지고, 커피도 과음(過飮) 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요즘 하는 말로 ‘레전드’ 동화 작가인 안데르센이 자기 이야기는 어른을 위한 것이라고 술회하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우리는 동화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상상력을 키워주는 이야기로 알고 있지만, 안데르센의 동화는 마냥 희망을 주거나, 인과응보를 가르치거나, 주인공의 해피엔딩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어공주가 왕자와 결혼하는 해피엔딩은 디즈니사(社)에서 만든 것이고, 성냥팔이 소녀는 가난하기 때문에 얼어 죽는다. 이렇듯 안데르센의 동화는 어른이라야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철학적인 의미를 지닌다. 또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으며,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안데르센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동화로 표현되었다니, “미운 오리 새끼”를 다시 읽어볼 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화려한 인물들이 실제로는 우리와 같이 삶을 고뇌하고, 어쩌면 일반적인 삶보다 어려운 삶을 살았다는 점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작가는 아마도 이런 점에 주목하여 책을 쓴 것 같다. 작가는 책의 말미에서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통해 지금 이 순간 혹독한 삶의 위기에 처해 있는 누군가가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책을 쓴 목적을 밝혔기 때문이다.
역사 인물들의 숨겨진 삶의 이야기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희망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역사의 새로운 역할과 의미를 발견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다만, ‘역사 인물’의 이야기를 더 소개하여 독자를 어루만져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물론 일진 여학생들의 이야기도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