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종교 사이에 선 사람들

허주은 저, 유혜인 역,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창비, 2025

by deckle edge
KakaoTalk_20250706_144445634_02.jpg 허주은 저, 유혜인 역,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원제: The Silence of Bones)", 창비, 2025

"아프냐? 나도 아프다."

벌써 20여 년 전,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다모(茶母)'의 유명한 대사이다.

'조선 여형사'라는 독특한 소재로 관심을 끌었던 '다모'는 '다모 폐인'이라는 유행어를 남길 정도로 당시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드라마 '다모'는 좌포도청 종사관(종 6품) 황보윤과 같은 기관에 소속된 다모 채옥을 주인공으로 하는데, 비슷한 시기, 비슷한 소재의 장편소설이 요즘 눈에 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허주은 작가의 소설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이다. 원제는 'The Silence of Bones'. 번역은 유혜인 님이 하셨다.

소설에 대한 서평(또는 독후감)은 쓰기 어려운 점이 많다. 특히 스포를 굉장히 싫어하는 독자들이 있어서 조심스럽다. 그리고 소설은 문학이어서, 서평이나 독후감을 쓰는 사람의 주관적인 감상이 많을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읽는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거나 작품에 대해 섣부른 편견을 갖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괜한 기우였으면 좋겠다.)


소설은 '한(韓) 종사관'과 다모 '설'을 주인공으로 한다. 종사관과 다모의 인물 구성이 드라마와 비슷하다. 종사관과 다모에게 부닥친 사건은 코가 잘린 채 자신의 칼로 살해된 양반집 아낙네와 관련된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것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정조 사후로,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과 세도 정치로 넘어가는 때다. 정조는 짐작은 할 수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1800년에 승하했다. 노론은 영조를 옹립했지만, 그의 손자 정조는 노론과 남인을 고루 등용하며 왕권을 지켰다. 더욱이 남인은 노론 중심의 정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입지를 지키고 싶어 했고, 성리학만이 아닌 다른 사상도 흡수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중 하나가 천주교였다. 그러나 노론은 보수적인 질서를 유지하며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였으니, 남인을 끌어들인 개혁 군주가 달갑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소설에서 '천주교'는 사건 전개의 중요한 핵심어다. 황사영 백서 사건이나 주문모 신부 등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러나 역사소설이라고 평가할 만큼 역사적 사건을 깊이 다루기 보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정도이다. (소설의 줄거리와 사건 전개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 하겠다.)


나는 이 책에서 허주은 작가가 '한(恨)'의 정서를 표현한 부분이 탁월하다고 느꼈다.

"한(恨), 이 말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해소되지 않은 분노, 무력감, 극심한 고통, 복수심. 이처럼 많은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한."(316쪽)

이처럼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한'을 꽤나 분명하게 표현하였는데, 영어로 표현했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장편소설인 만큼 500쪽에 가까운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숨 막히는 빠른 전개와 몰입감, 작가의 간결한 필체와 옮긴이의 읽기 쉬운 번역 등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내용에 치우치지 아니한 점도 역사 지식의 정도와 관련 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역사 소설을 읽은 것도 오랜만이고, 독후감을 쓰는 것도 오랜만이다. 굳이 소설의 형식이 아니어도 역사책은 재미있기에 소설을 가깝게 하지 않은 것 같다. 소설에 관한 독후감도 다른 책에 비해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역사를 소재로 한 흥미로운 소설을 가까이하고, 나름의 독후감도 써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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