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응천, 국호로 보는 분단의 역사, 동녘, 2019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대한민국’은 “대~한~민! 국!, 짝짝짝 짝짝”으로 불렸다. 어쩌면 1919년 3‧1 혁명의 구호가 메아리친 이후 가장 많이 회자된 말이 대한민국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의 영어 표기는 ‘Korea’ 또는 ‘R.O.K.(Republic of Korea)’가 아니던가?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코리아. 고려에서 온 말이다. 만약 대한민국을 그대로 영어로 옮기면 ‘Republic of (the) Great Han’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공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은 민주주의가 아닌데?”라며 반문할 것이다. 그에 대한 정정(訂定)은 다음에 하자. 그런데 영어 표기는 ‘D.P.R.K.(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다. 영어 표기로는 남한이든 북한이든 고려가 근간인 셈이다. 이렇듯 우리가 무심코 부르고 당연하게 인식하는 우리 국호는 무엇인가 어색한 점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국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국호로 보는 분단의 역사』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이 책은 강응천 선생님께서 쓰셨다. 2019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나는 2020년 11월에 샀다(나는 책을 사면 내 이름과 함께 구입한 날짜를 기록해 놓는 습관이 있다). 강응천 선생님에 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국호를 주제로 한 얇지만 내실 있는 책이 나왔다는 점, 그리고 책날개의 저자 소개란에 ‘<남북통사> 기획의 첫 번째 성과물’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남한과 북한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우선, 국호는 국가의 정체성(identity)과 정체(政體)를 밝히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는 점을 알아두자(5쪽). 대한민국에서 정체성은 대한이고, 민국은 정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정체성을 조선에 두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정체로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저자의 분석처럼 사실 남한과 북한의 정체는 같다. ‘민국’이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든 한 사람의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국가가 아닌 ‘공화국(共和國, republic)’이기 때문이다(29~32쪽). 다만, 북한의 경우 ‘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확립되는 과정이 꽤 복잡하다. 남한이 ‘대한’이 되는 과정이 복잡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129쪽).
‘대한(大韓)’은 ‘한(韓)’을 가리킨다. 단군조선이 위만에게 밀려나 남쪽으로 내려와 한(韓)을 세운 이래 우리 민족은 한민족이라 불렸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삼한(三韓)을 일통(一統)’했다고 한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1897년 10월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세운 ‘대한제국’의 국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
이에 반해 ‘조선(朝鮮)’은 1392년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켜 세운 왕조를 가리킨다. 단군조선을 계승했다고 표방했지만, 뚜렷한 연관성을 찾기는 어렵다. 그저 상징일 뿐이다. 또한, 일제(‘일본 제국주의’의 줄임말)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고, 식민지를 ‘조선’이라 폄하했다.
일제강점기를 겪어내면서 자주독립의 새 국호로 ‘대한’을 지목한 것은 김구의 임시정부였다. 임시정부를 김구의 소유물처럼 서술한 이유는 많은 시련 속에서 뚝심 있게 임정을 이끈 사람이 김구였기 때문이다. 이후 대한민국은 민족주의 진영의 국호가 된다. 다만, 해방 이후 통일 정부를 구성하려는 노력이 실패한 결과, 대한민국이 김구의 임정이 가진 본래의 뜻과는 달리 변색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131쪽). 한편, ‘조선’은 사회주의 진영의 국호였다. 민족주의자들이 이미 ‘대한’을 선점했고, 무엇보다 인민대중은 조선이 더욱 친숙했기 때문이다(37쪽). 노농대중을 중요하게 여겼던 사회주의자들의 관점이 느껴진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이 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되기까지는 약 3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지만, 그 과정만큼은 30년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치열하고 지난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3부. 통일의 코드에서 분단의 코드로’에서 그 과정을 다루었는데, 특히 ‘3장. 남북한 국호의 특징’은 요약본이라 할 수 있다.
그 내용을 조금 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국호는 30년 종교 전쟁을 종식한 베스트팔렌 조약(1648) 이래 유럽 각국에서 나타난 근대 국가에서 기인한 근대성의 산물이다. ‘대한’은 전근대 ‘조선’과 식민지 ‘조선’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였고, ‘민국’도 전근대 왕정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민권 국가’를 수립하려는 의도였다. 여기에 해방 후 자주독립 국가를 수립하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뒤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이승만 등 단독정부 수립 추진 세력에 의해 ‘반공(反共)’의 코드로 재설정됨으로써 명명이 일단락되었다.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호는 세계사적으로 ‘민주주의’와 ‘인민’이 함께 사용된 전례가 없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식민지라는 특수한 현실 속에서 국제 공산당 기구(코민테른, comintern)와 우리 사회주의자들의 고민과 실험의 결과였다. 민족 부르주아 계층과의 협력 문제를 위시하여 탈식민과 동시에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장(場)이 북한이었다. 특히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듯 민주주의가 아닌 것 같은 북한이 국호에 ‘민주주의’를 박제한 것은 이른바 ‘민주기지론’에 따른 것이었다. 38도선 이남은 해방 후에 미국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반동 민주주의에 사로잡혀있으므로, 진정한 진보적 민주주의의 기지로서 사명을 띤 곳이 38도선 이북이라는 인식이다.
끝으로, 다음과 같은 저자의 멋진 표현으로 서평을 마무리하고 싶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어느 한쪽이 국호의 지위를 잃는 위험을 무릅쓰는 대신 분단국가의 국호라는 지위를 나눠 가졌다(154쪽).”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미완의 국호다. … 해방 후 한국 현대사가 전진을 멈췄던 지점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에 미완의 국호다(173쪽).”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넓은 관점에서 보면, 같은 국호다. 정체(정체성)도 우리에서 비롯되었고, 국체(정체)도 민권 국가를 지향한다. 또한, 두 국호는 공통적으로 통일국가의 국호로 설계되었고, 자주독립과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는 목적을 지녔다(179쪽). 그러나 두 국호가 서로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된 것은 분단 때문이었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던 분단은 전후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호는 물론 지금까지 줄곧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면 언젠가 통일이 된 후 우리는 어떤 국호를 가질까?
누가, 어떤 경로로 통일을 이룰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엇이 되었든 충분한 사회적 협의를 거쳐 자주독립의 민권 국가를 지향하는 이름이면 좋겠다. 그러나 그 과정이 또한 얼마나 지난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