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개똥철학

할머니 손

by deckle edge

가수 이한철의 ‘집으로’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할머니 까슬한 손바닥이 내 등을 쓰다듬는 온기”

우리 할머니의 손바닥도 까슬했다.

논농사를 짓지는 않으셨지만, 얼마간의 밭농사를 지으셨고,

바닷가에서 조개며 맛(맛조개)을 캐는 ‘맨손어업’도 하셨다.


무엇보다 할머니 손을 까슬하게 했던 것은 모시였다.

모시는 서천군 한산면에서 생산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

내 고향은 종천면이지만,

마을 아낙네들이 모시를 했다.


모시는 손이 많이 가는 옷감이다.

모시풀에서 속껍질을 벗기고 잘 말려 ‘태모시’를 준비한다.

태모시를 다시 물에 담근 후

엉키지 않게 엄지에 감고

이(齒)로 일일이 한가닥 한가닥 잘게 쪼갠다.

‘쪼갠다’는 표현보다는 ‘짼다’는 게 더 맞다(모시 째기).

이렇게 준비된 모시 한 올 한 올을

대나무로 만든 ‘쩐지’ 기둥에 걸쳐 놓고

한 올씩 빼내어 무릎에 놓은 다음 손바닥으로 비벼서 실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모시실을 광주리에 똬리처럼 하나씩 올려놓는데,

어렸을 적 내가 본 모시 만드는 과정은 여기까지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할머니 앞니에는 잇골이 났다.

‘잇골’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말이라고 어디선가 들었다.

그렇게 수십 번 쪼개고 쪼개어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랗게 만든 실을

베틀에 놓고 방직(紡織)을 하면

잠자리 날개보다 투명하고 가벼운 모시옷이 된다.

우리 할머니는 맹장 수술을 하셨었는데,

그때 모시실을 삼키셔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지...


어렸을 적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할머니다.

까슬한 손으로 내 등은 물론이고

배앓이하는 내 배를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셨다.

“할머니 손은 약손”이라는

다정하면서도 애달픈 주문(呪文)이 귓전에 맴돈다.

그러나 그때는 할머니 손이 까슬한 줄 몰랐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참 까슬했던 것 같다.

그때 할머니의 고된 삶을 어찌 헤아렸겠는가.


이제는 할머니를 볼 수 없지만,

내 기억 한 편에는

할머니와 함께했던 추억이 가득하다.

언제나 나를 보물로 여겨주셨던 할머니.

할머니 성격이 다소 직설적이셨고 괄괄하셨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온화한 봄꽃이셨다.


어쩌다 전화를 걸면

“우리 강아지여, 내 새끼여”라며

맞아주시던 할머니의 청량한 목소리가,

언제고 전화하면 꼭 들릴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에게 해드린 것이 없다.

아무것도 없다.

할머니가 위암으로 고통받으실 때도,

다리에 힘이 풀려 식탁에서 주저앉으셨을 때도,

멀뚱히 지켜보았던 손자 놈이 나였다.

그런 나쁜 손자가 어디 있나.


이제는 흐릿한 기억으로 선명하게 남은

우리 할머니의 까슬하고 부드러웠던 손이,

유달리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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