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출토되었다는 ‘농경문 청동기(農耕文 靑銅器)’이다. 이름처럼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과 밭, 새 등이 보인다. 고리가 있으니 어딘가에 걸어두었을 것 같은데,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소실된 아랫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생각보다 작은 크기이다(길이 13.5cm).
청동을 도구로 만든 시기를 ‘청동기 시대’라고 한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데, 높은 온도로 금속을 녹이고 일정 비율로 섞어 합금을 만들었다니, 돌을 갈아서 도구를 만들 때보다 훨씬 스마트해진 느낌이다.
청동의 주원료는 구리인데, 구리는 귀해서 아무나 쉽게 쓸 수 없었다. 그리고 청동은 철에 비해 강도가 크지 않아서 농기구로도 부적합했다. 대신 청동은 날카로우면서도, 빛깔이 곱고 반짝였으므로 무기(청동검)나 제기(청동거울, 청동방울 등)로 사용되었다. 청동검을 손에 들고 다른 부족과 싸우는 전사, 온몸을 청동 장식으로 치장하고 주문을 외우는 샤먼(무당)을 생각해 보라.
참! 만주와 한반도에서는 모양이 재미있는 청동검이 출토된다. 중국의 악기인 ‘비파’를 닮았다고 하여 비파형 동검이라 한다. 칼날이 곡선이어서 보기에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살상력은 컸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리고 특이한 점 하나 더! 비파형 동검은 칼몸과 손잡이, 코등이 부분이 분리된다. 각각 만들어 조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농기구는 간석기를 썼다. 특히 반달돌칼은 곡식을 수확하는 데 유용한 대표적인 간석기다. 반달돌칼은 일본에서도 비슷한 형태가 출토되므로,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논농사도 지었지만, 대부분은 밭농사가 중심이었다.
청동기 시대의 특징이라면 더 이상 평등한 사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청동기는 무기가 되고, 제기가 되었기에, 자연스레 특권층을 만들어내었다. 즉, 계급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높은 권력자는 청동기를 가지고 권력을 행사했다. 정치적 권력은 물론, 샤머니즘(shamanism)적 권력도 함께(제정일치)!
권력은 죽은 후에도 계속되었다. 권력자, 그를 ‘군장(君長, chief)’이라고 하자. 군장은 자기 권력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고 유지하기 위해 커다란 무덤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보이는 큰 돌(巨石) 문화라고도 볼 수 있는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돌을 고여서 큰 돌을 떠받친 형태다.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독특한 거석문화이다.
철기 시대는 철을 활용하여 무기는 물론 농기구도 만들어 쓴 시기다. 철은 청동보다 재료를 얻기 쉽고, 단단하고, 날카로워서 보편적으로 활용될 수 있었고, 농사를 짓기 한결 쉬워졌다. 다만, 다른 부족과 전쟁이 더욱 빈번해졌는데, 이러한 변화를 좋다고 할지, 나쁘다고 할지 모르겠다. 반면, 청동기는 의식용 도구로 굳어졌다.
이때, (만주가 아닌) 한반도에서 만주와 다른 청동기 문화가 발달한 점도 독특하다. 칼날이 비파형이 아니라 오늘날 칼처럼 날렵해졌고(세형동검 또는 한국식 동검), 청동거울에 기하학적인 무늬도 촘촘히 새겨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