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유순한 내 친구 강희는 ‘까미’라는 강아지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매일 밥을 챙겨주고 되었고, 산책을 시켜주었고,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잤다. 그 시간이 20년 동안 이어져 왔다. 그 사이에 나는 강희와 친구가 되었고, 까미와 별이를 만났다. 그렇게 우리 넷은 한 우주를 만들었다.
내가 까미를 처음 만났을 때는 파란색 롱 스커트를 입고 손으로 부채질을 하던 여름이었다. 빛이 쏟아지는 골목길 저 멀리 강희가 손을 흔들었고, 그 옆에는 개 두 마리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아이들을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별이를 나를 경계했지만 까미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다리를 긁었다.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나를 맞이했다. 첫눈에 나를 좋아해 주다니. 나는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그리고 이제야 말하지만 나도 첫눈에 까미가 좋았다.
강희는 한꺼번에 개 두 마리를 산책시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냐고 말했다. 대충 도와달라는 뜻으로 들렸고, 방배동으로 강희의 얼굴을 보러 갈 때마다 산책에 참여했다. 둘이서 함께 개들을 산책시키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도시가 개들은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코를 킁킁댔다. 전봇대나 쓰레기 봉지, 담벼락 같은 곳을 특별히 좋아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동네를 조금 더 자세하게 관찰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는 넷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여름이었다. 강희의 집은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주택이었는데 여름이면 창가로 넝쿨식물이 올라와 싱그러운 그늘을 만들어냈다. 커다란 침대 위로 나뭇잎 모양의 그늘이 어른거리면 나는 그곳에 누워 가만히 낮잠을 청했다. 그러면 까미와 별이가 슬금슬금 기어 올라온다. 까미는 내 다리 사이를 좋아했고, 별이는 내 옆구리를 좋아했다. 두 마리의 개가 내 옆을 지켜주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나는 천장에 드리운 그늘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거야.
그러던 어느 날 낮잠을 자던 나는 악몽을 꾸었다. 뿌리 깊은 공포가 튀어나와 나를 괴롭혔고, 꿈에서 깨어나 엉엉 울었다. 내 울음소리에 개들은 덩달아 깨어났고,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강아지들이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영상에서처럼 다정히 달래주길 원했다. 코를 킁킁대고 주인을 걱정하며 다가올 줄 알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다만 강아지들은 내게서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고, 나를 주시했다.
그날 밤. 일을 마친 강희는 돌아왔고, 나는 강아지들이 달래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러자 강희는 그건 강아지들이 내가 느끼는 공포를 고스란히 읽어서 그런 거라고 말해주었다. 나처럼 무서웠기 때문에 어쩔 방법이 없었을 거라고. 그 말에 개들의 눈을 쳐다보았다. 동그란 모양의 검은 단추처럼 반질거리는 눈동자는 모든 걸 흡수할 것처럼 보였고, 그때 서운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강희와 나, 별이와 까미. 우리가 산책하던 방배동은 강남이었지만 번지르르한 건물들이 몰려 있는 곳과는 달랐다. 조금 오래된 주택들이 모여있는 동네는 적당히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물론 가격을 알면 비싸서 까무러치겠지만 겉으로 보면 어느 동네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 어느 순간 재개발 딱지가 붙기 시작했다. 제일 멀리 있는 골목부터 사람들이 살지 않게 되었는데 밤에 가면 디스토피아 영화에 나오는 동네처럼 무서웠다. 하지만 그 무서움도 넷이 함께하면 낭만적으로 변했다. 가로등만 켜져 있는 골목을 지나가면 고양이가 튀어나왔고, 라일락 나무는 담벼락보다 훨씬 자라있었는데 마치 자기를 보라는 듯이 향내를 풍겼다. 그러면 나는 집주인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마음껏 향기를 맡았고, 꽃을 따서 개들에게도 나눠 주었다. 그때 강희는 예쁜 집들이 아파트 때문에 사라지는 게 싫다고 했고, 나는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서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시간을 계속 흘러갔다. 주택이 있던 방배동은 높은 아파트가 세워질 준비를 했고, 노견인 까미는 나이를 더 먹어가고 있었다.
인사하러 와.
까미의 마지막을 직감한 강희가 전화로 말했다. 까미는 폐암이었다. 두 폐에 암이 모두 전이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차표를 예매하고 충주로 갔다. 그리고 잔뜩 슬픈 마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까미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나는 강희를 보았다. 까미가 숨을 자꾸 이상하게 쉬어 강희는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서 말했다. 나는 자세히 까미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았지만 죽음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별다른 말 없이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고, 까미도 무사히 일어났다. 강희는 이제 주택이 아닌 아파트에 살지만 햇살은 여전히 방을 한가득 채웠다.
까미, 이제 보내줄까?
강희는 등을 둥글게 말고, 까미를 보며 말했다. 까미는 어제와 다르게 숨을 헐떡였다. 누가 봐도 힘들어 보였다. 나는 물어보고 싶었다. 까미야 어떻게 할래. 우리랑 조금 더 있을래 아니면 편하게 갈래. 까미의 숨을 점점 더 거칠어졌고, 결국 강희는 까미의 안락사 일정을 잡았다. 당일 오후 2시 반이었다. 아직 4시간 정도 시간이 남은 상태였다. 나는 그 시간을 뭘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강희와 까미와 함께 잠이 들어버렸다.
꿈은 꾸지 않았다. 그냥 평소와 너무 똑같은 느낌으로 침대에서 천장을 보았다. 그러다가 눈을 떴는데 햇살은 여전히 환했다. 이상했다. 이 천국이 이제 끝나가고 있다고? 우리는 너무나도 평화롭게 잠에서 깨어났는데? 자다 깬 까미는 너무나도 귀여웠고, 오후의 풍경은 몽롱했다. 그러다 예고도 없이 까미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당황한 우리는 까미를 안은 채 병원으로 뛰었다. 하지만 대기가 있어서 바로 안락사를 하지 못했다. 까미는 계속 괴롭다고 소리를 질렀고, 강희는 병원 구석에서 까미에게 볼을 맞댄 채 고스란히 그 시간을 받아냈다. 까미는 죽어가고 있다. 우리의 천국이 멀어지고 있다. 나는 엉엉 울면서 까미에게 인사를 했다.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나와 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맙다고. 까미가 그 말을 다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은 천천히 몸을 떠났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말로는 부족한 고백들을 쏟아냈다. 그렇게 까미는 20살을 보내고,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다행인 건 강희가 까미를 안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까미는 죽었고, 태워졌으며 유골함으로 강희에게 돌아왔다. 이제 강희는 별이와 함께 유골함을 들고 산책을 한다. 집으로 돌아오면 예전처럼 발을 씻기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까미도 산책하고 온 기분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까미에게 못다 한 말이 있다.
안녕 까미야. 나야 설아언니. 처음 봤을 때부터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
우리 좋은 친구 사이였지? 7년 동안 나랑 친구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많이 사랑해
너를 많이 사랑한 만큼 슬프지만 그래도 까미랑 친구가 되었던 시간이 있어서 행복했어.
까미는 좋은 개였고, 사랑스러운 개였어. 우리 다음에도 만나서 친구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