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이들과 데이뚜
친정 엄마의 진짜 생일이었다. 남편이 내일까지 출장이라 지난주 미리 생신 파티를 했다. 그렇다고 아무렴 오늘을 그냥 지나치기는 좀 도리가 아닌 것 같아 맛있는 점심을 사드리려 했다.
아침에 시댁 조카 공부를 봐주러 가야 했는데 급 취소가 되는 바람에 더욱 여유가 생겼다. 날씨는 꿀꿀하지만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 엄마가 이시돌로 드라이브를 다녀오고 싶어 하셨다. 마침 근처 파스타 맛집도 알고 있었기에 코스가 탁탁 짜였다.
생맥주가 끝내주게 맛있는 그곳에서 행복한 오찬을 즐기고, 가랑비가 내렸지만 차에서 나와 풀을 뜯어먹는 소떼도 구경하였다. 어둡진 바탕에 파아란 속살을 드러내는 것 마냥 오묘한 하늘색을 바탕으로 초록초록한 오름과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는 시간. 그 풍경이 잠깐이지만 나에게도 충만하게 다가왔다.
다시 제주시로 돌아가는 내내 "아~~~ 동화구연 가기 싫다~~ 아.. 나는 자신이 없는데..."를 반복하는 우리 첫째를 어르고 달랬다. 이렇게 가기 싫어하는 수업을 둘째는 또 자기도 갈 거라며 본인만 쏙 빼놓고 엄마와 형아만 사라지는 게 싫었는지 지난주부터 헤어질 때면 울고불고 난리다. 낮잠 자는 틈을 이용하려 했지만 눈치 빠른 녀석은 잠도 꿋꿋하게 버티고, 잠이 들어도 차에서 내리는 소리에 기가 막히게 깨 역시나 오늘도 울음바다를 만들었다.
첫째는 가기 싫어해, 둘째는 가겠다고 해. 나는 지금 이 아이들을 두고 뭐 하는 건가 싶었다. 힘들면 손을 꼭 들고 '나가고 싶어요'하고 말하라고 첫째에게 얘기하고 선생님께도 양해를 구해 강의실로 들여보냈다. 휴. 용케 첫째는 수업을 끝까지 듣고 아이들 무리에 섞여 나왔고, 그런 아이에게 폭풍 칭찬을 해 주었다. 그러나 바로 내게 던지는 한 마디. "엄마! 나 이제 안 가도 되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아이는 수업에서 오늘도 불편함을 느꼈고, 밤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선생님도 조금 무서웠던 것 같다. 그래, 지난번에는 한 번만에 포기였지만 이번에는 두 번 용기 냈으니 성장한 거라 생각하자. 당분간 사교육은 안녕, 집에서 예체능을 많이 즐기게 해주어야 할 것 같다.
낮잠을 견디며 하품만 열바가지 해대는 두 아들을 데리고 엄마와 성당에 갔다. 둘째의 잠투정에 도를 닦는 기분으로 어린이미사를 드리고, 아이들은 이시돌에서 샀던 예쁜 묵주에 축성도 받았다. 끝나서 마트로 가 장도 보고 알차게 하루 일과를 마치며 엄마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을 씻기고 나니 나의 하루에도 종료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하루가 고단했지만 더 피곤하셨을 엄마를 도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먹이고 나도 맛있게 먹었다. 역시 비빌 언덕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요즘 엄마와의 관계가 많이 불편했었는데, 조금씩 매듭이 풀어져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러할 거라 믿는다.
잠시 베란다에 있던 나의 초등시절 일기장을 들추어보았다. 최근 학교에서 내가 돌보는 5학년들의 기행문을 읽으며 나는 어떤 일기를 썼는지 궁금해져서였다. 그러나! 나의 글쓰기 수준에 정말 깜짝 놀랐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나열이었다. 재밌고 색다른 표현이 어디 있나 눈을 크고 뜨고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글을 잘 쓰는 분들은 어린 시절도 남다른 것 같던데, 나는... 아닌가 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글도 5학년 때의 일기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표현력은 타고나야 하는 것일까.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나아지겠지란 희망을 갖고 계속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역시 지금도, '오늘의 일기 끝' 하고 마무리하고 싶은. 나의 한계를 직면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