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물은 다 챙겨두었는데
아이들의 사교육에는 관심이 없었다. 공교육이 우선이라는 마음이 강했고, 집에서 조금씩 봐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더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체능은 조금 달랐다.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미술, 음악, 체육 어느 분야든 잘하는 걸 만들어주고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는 마음이 흔들렸다.
어린이집 친구들은 벌써 센터나 미술학원, 태권도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사실 그러기에도 6세는 아직 어린 나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학기 초 자주 넘어지던 첫째에게 유아체육으로 조금 더 대근육 훈련을 시켜줄까 싶어 처음으로 스포츠센터를 가보았다.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자주 만나는 쌍둥이 친구들이 같은 반에 있었다. 그 아이들은 너무나 적응을 잘하는 반면 우리 아이는 복도에서 내 등에 업혀 활동실을 바라볼 뿐이었다.
"엄마, 나 안 할래. 무서워."
"어떤 게 무서운데??"
"저기 저 형아나 친구들이 나 때리면 어떻게 해?"
"에잉~~ 그런 친구들이 있지도 않을 거고 혹시나 그렇다 하면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되지~"
"그런데 선생님이 내 목소리를 못 들으면 어떻게 해?"
여기서 아이의 불안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래도 불안이 많은 아이였어서 작년에 새로 어린이집을 옮기며 나도 아이도 3월 한 달을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따뜻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이제는 완전히 자기 영역이 되었다.
그러나 낯선 환경에 놓이면 바로 긴장하고 얼어버리는 첫째를 보며 나중에 학교에 입학해서는 어쩌지, 이게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풀릴 문제인가 아닌가. 앞을 내다보지 못하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그날로 스포츠센터는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내가 집에서 더 같이 뛰어주고, 주말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충분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고 우연히 동네 재단에서 하는 수업을 알게 되었다. 비용도 매우 저렴했고 8주 동안 진행하는 동화구연 수업이었다. 마침 내가 확인한 날부터 신청기간이었어서 이건 운명이다 생각하며 등록을 했다. 또다시 쌍둥이 엄마에게도 연락해 같이 신청을 했다.
동화구연은 체육수업보다 정적이기에 사부작거리길 좋아하는 아이에게 더 적합할 줄 알았다. 요새 책을 재밌게 보고 있으니 선생님을 통해 듣는 이야기도 즐거울 거라 생각했다. 옆에 쌍둥이들도 있으니 조금씩 우리 아이도 낯선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겠지라고 예상했으나 이번에도 나의 기대는 엎어지고 말았다.
아이와 복도에서 직전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는데 잔뜩 긴장을 하는 아이의 표정. 수업이 끝나 아이들이 우르르 강의실에서 나오는데 첫째가 너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무서워~~~~~~~~~ 나 안 들어갈래~~~~~~~~~"
한 번만 수업을 들어보자며, 이제 곧 쌍둥이 친구들도 올 거고 엄마도 같이 있어주겠다고 말하고 선생님께 양해를 구한 뒤 자리에 앉았다. 중간에 친구들이 왔지만 내 무릎 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아이. 조금씩 수업에 빠져들고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아 엉덩이가 아프다는 핑계로 아이와 떨어져 앉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강의실을 나오지는 못했다.
다음 수업 때는 혼자 용기 내서 들어와 보기로 선생님과도 약속을 하고 나왔지만, 며칠 전부터 동화구연만 생각하면 눈물을 글썽이며 혼잣말로 "아.... 가기 싫다.... 무섭다...." 하는 아이를 단지 아이의 사회성을 위해 다니게 하는 게 맞나 아닌가 고민이 들었다. 나중에 알아서 잘 적응할 아이를 지금 너무 불안에 떨게 하는 건 아닌가, 그렇지만 세상에 좋은 사람들도 있다는 걸 이렇게 조금씩 확장시켜줘야 하는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오늘이 바로 두 번째 수업이 있는 날이다. 평소에 주말을 기다리는 아이인데 이 수업 때문에 토요일이 싫어져버렸다. 지난번 체육 수업은 한 번만에 접었으니 이번에는 딱 두 번만 가보자고, 엄마도 낯설지만 우리 같이 용기를 내자고 아이를 달랬다. 처음으로 다니는 외부 수업에 준비물도 딱 마련했는데, 아이의 마음은 챙기지 못한 부족한 엄마다.
오늘 과연 아이는 수업 듣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심지어 쌍둥이들은 결석할 예정이라 익숙한 친구들도 없을 텐데 아마 금방 나와버릴 것 같다. 그러나 5분 만에 나온다고 해도 잘했다고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어야겠다. 아이의 불안을 보는 내가 불안해지지 않게 내 마음도 잘 다스려야지. 아니다, 그냥 아이에게 불안 요소를 주지 않는 게 맞는 걸까. 힝. 도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