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

Day 2. 사랑받지 못할 까봐 불안했구나

by 반짝이는 루작가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왜 나보다 열 살은 더 어려 보이는 대학생 봉사자들과 나를 비교하고 있었을까. 새벽에 일기를 쓰며 생각했다. 그들보다 잘하지 못해 초조했구나. 담임 선생님께 인정받지 못할 까봐, 아이들에게 사랑받지 못할 까봐 불안했구나. 어릴 적 부모님의 싸움을 막으려 뭐라도 잘해야 했던 어린 나를 끌어내고 안아준다. '괜찮아, 너는 충분히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운 아이야.'


지난 3월 말부터 초등학교에서 교육활동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선생님이 시키지 않아도 나름 내 할 일을 찾아가며 최선을 다했다. 담임선생님께서 나의 공을 인정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학생들의 이름도 3일 만에 다 외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불쑥 내게 건네주는 마이쮸, 스티커 등을 받으며 이 아이들도 내 진심을 느끼고 있구나 싶었다.


그러다 엊그제 우리 반과 옆반에서 페트병과 뚜껑을 이용한 자동차 만들기 시간을 가졌고, 나를 포함하여 대학생 봉사자선생님들이 여럿 투입되었다. 검정티에 청바지만 입고 있어도 매끈하고 새하얀 얼굴이 '나 생기발랄한 20대예요'하는 것 같았고, 어떤 대학생은 예쁘게 네일도 받고 샤랄라한 옷을 입어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나도 줄무늬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었지만 뭔가 그들과는 다른 스타일의 아줌마 청바지. 메모지를 항상 챙기다 보니 휴대폰과 펜을 넣을 미니 크로스백을 메고 있는, 패션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멋없는 이모 선생님 같았다. 심지어 가방 색깔은 그 흔한 베이지.


송곳으로 병뚜껑은 엄마의 파워로 척척 뚫어주었지만, 글루건 사용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해 아직 녹지도 않은 심을 힘으로 짜내려 하고 있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한 봉사자 선생님이 다가와 "글루건은 제가 할게요!"라고 말했을까. 나도 한때는 아이들이 나만 찾는 선생님이었는데, 나도 한때는 체력이 넘쳐나 나의 당찬 걸음을 따라 하는 선생님이 있을 정도였는데. 라떼는 생각이 절로 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언니들이 나를 보면 한창인 나이겠지만. (ㅠㅠ)


참 부끄럽게도 여자 대학생 봉사자들에겐 견제하며 잘 다가가지 못했고, 궁금한 건 남자 대학생 봉사자와 의견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글루건 작업을 하는 예쁜 두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얼마나 옹기종기 모여 농담을 주고받던지. '흥칫뿡이다, 잘 먹고 잘 살아라!'


라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창피했다. 나이를 도대체 뭘로 먹었니. 착잡한 마음으로 다음날 20대 때의 내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때는 국제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사진 2025. 7. 19. 오전 5 57 58 (1).jpg
사진 2025. 7. 18. 오후 3 55 33.jpg


아이들이 "미스 루씨!" 하며 내게 다가올 때 얼마나 우리는 사랑을 주고받았던가.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이 조카에게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고 했다면, 나에게는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이다. 내가 나이를 제대로 먹었다면 10년이란 시간 동안 내가 받아들이는 품은 엄마처럼 더 커져야 하는 것이고, 호호아줌마처럼 웃으며 대충 넘어가는 것도 있어야 한다.


외적이고 보이는 걸로 대학생들과 나를 비교할 게 아니었다. 비교할 수 없는 내면의 단단함을 키워가고 있어야 했다. 나를 좋아하다 박쥐처럼 대학생들에게 붙는 아이들을 봐도 질투의 눈빛이 아닌, '으이그 귀여운 녀석들!'하고 생각할 줄 알아야 했다. 깎이고 깎여 둥글둥글해지는 게 나의 목표였으면서 그러지 못했음을 깨달으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이제라도 알아차렸으면 됐다. 그리고 그 내면에 불안이 있었고, 그 불안을 안아주었으면 됐다. 그 덕에 지금이라도 내 아이들과 학교 아이들을 더욱 넓은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진 2025. 7. 19. 오전 5 57 58.jpg


정말 딱 10년 전이다.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에 사진을 찍고 출력해 각자에게 일일이 카드를 써주었었다. 너무 정들어 울면서 아이들을 안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 아이들이 벌써 고3, 아니면 스무 살이 되어 있겠지. 보고 싶은 내 새꾸들. 밝고 맑은 그들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앞으로도 내가 만날 아이들을 기대해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도 느꼈다, 코모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