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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루작가 Jul 04. 2024

잠시 멈춤의 시간 (2)

코로나로 격리된 4박 5일의 시간

심장에서 혈액이 아니라 가래를 만들어 보내는 것처럼 코를 풀 때마다 연둣빛 덩어리가 펑펑 펌프질하듯 튀어나왔다. 2년 전 처음 코로나에 걸렸을 때는 목이 불편해 기침과 가래로 고생했는데 이번엔 코였다. 코 막힘, 콧물, 코 가래.


어쩌면 호텔방이라 환기를 시킨다고 했지만 건조하고 공기가 탁해 더 안좋은 환경을 제공했는지도 모르겠다. 에어컨을 켜면 춥고, 끄면 덥고. 밤잠을 길게 4시간 이상 자지를 못했다. 몸을 회복하러 갔지만 사실 신체적인 고통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은 세상 편했다. 비록 아이들 등원시키랴, 주말 내내 아이들 돌보랴 정신없었을 남편에게 제일 미안했지만 혹시나 내가 돌아가 퍼뜨릴 바이러스에 염려하며 4박5일의 격리 시간을 가진 게 참 감사했다. 그야말로 나홀로 호캉스였다.


다행히 그들은 매일매일이 무사했고, 친정부모님도 시간이 되실 때마다 아이들을 살펴주셨다. 덕분에 열심히 달린 나의 상반기를 돌아보며, 하반기를 즐겁게 나아갈 힘을 재충전 할 수 있었다.


잠만 자고 쉬어도 모자랄 판에 5년 만에 내 의지대로 돌아가는 시간이 너무 귀해 자꾸만 움직여졌다.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다. 세세한 활동까지 다 쓰고보니 19가지나 했더라. (이것도 병이다 병) 그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다. 바로 '첫 가족여행 포토북 만들기'.


만삭 사진을 찍을 때 스튜디오에서 아이의 성장과정을 앨범으로 만들어 주는 상품을 추천받았었다. 그러나 너무 비싸기도 했고, 내가 추억을 만들어주지 해놓곤 정신없어 아이의 자라는 과정을 앨범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지냈다. 그래서 대신 가족 여행을 시즌북처럼 만들어 간직해야지 다짐을 했었다. 그 시작이 이번 여행이었다.


추천을 받고 스냅스와 찍스 중 고민하다 결국 찍스 어플을 이용했는데 눈이 멜라지는 줄(찌그러지는 줄) 알았다. 와우. 나중에 남편에게 말하니 패드로 해보지 그랬냐고. 순진한 멍텅구리인 나는 고지식하게 휴대폰으로만 포토북 작업을 하려니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내 손가락이 조금만 더 두꺼웠다면 나는 포기했을지도.


내가 상상한 포토북은 사진 옆에 글도 아기자기하게 넣는 거였는데, 사진을 고르고 사이즈를 수정하고 위치를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3시간이 걸려 스티커로 대충 꾸미고 마무리 전송을 했다. (글은 직접 네임펜으로 쓰는 걸로) 시력이 0.1은 떨어진 것 같아 그 이후에는 도무지 책도 패드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겠어서 일찍 자버렸다. (ㅎㅎ)


그리고 다른 하나는 브런치 스토리 시작 세팅이었다. 일단 브런치 작가가 되긴 했는데 그 이후에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던 낯선 그 곳. 마음은 이미 매거진도 카테고리별로 나누고 연재글도 올리는데 행동이 따라주지 못했다. 이젠 발을 담고 물을 적셔나갈 때다 싶어 작가명도 '반짝이는 루작가'로 바꾸고 작가 소개도 다시 바꾸었다.


전직이 뭐였는지도 써가며 커리어우먼이랬다가 구멍난 슈퍼우먼이랬다가, 아둘맘, 육아에세이를 썼다 지웠다 하다 완성시킨 내 소개 글.



"잘나가던 완벽주의자 커리어우먼이 빈틈많은 슈퍼우먼이 되어 돌아왔다. 매일 아침 너그러움과 숨구멍을 장착하며 성장 중인 아둘맘 루씨. 오늘도 그녀는 아름답게 반짝인다."


앞으로 내가 글을 써나갈 방향이 잘 드러나 있어 꽤 만족스러웠다. 육아일기를 쓰며 나도 돌아보고 성장하는 엄마, 완벽주의를 탈피하고 구멍을 장착해 아이들에게도 여유를 갖고 대하려는 엄마, 엄마이기전에 나는 사실 반짝이는 사람이라는 거.


제일 마지막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도 엄마가 된 이후에도 나는, 내 삶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반짝이고 있다는 게 참 감사할 일이었다. 이렇게 기쁘게 브런치 시작 준비를 하고 잠을 청했다.


눈을 떠보니 새벽 1시 40분. 땀으로 이마와 목이 젖은 걸 보니 다시 에어컨을 잠시 켜야될 시각. 그러나 뒤척뒤척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늘 반복되는 진로고민. 여기에 와서도 생각이 많다. 하반기 꿈지도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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