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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루작가 Jul 05. 2024

잠시 멈춤의 시간 (3)

코로나로 격리된 4박 5일의 시간

힘을 빼는 연습이 필요했다. 내가 하는 일이 선한 영향력을 주어야 한다는 것, 그 일이 수익화까지 잘 연결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했다. 어지러운 생각들로 2시간 넘게 잠을 자지 못하고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를 세며 겨우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마스크를 잘 쓰고 도서관으로 갔다. 내가 관심 갖고 해보려고 했던 아이와의 요리놀이, 그림책놀이, 아니면 영어 공부하는 엄마의 공부 기록 관련 책들을 찾아보았다. 이미 수십 권의 책들이 출간되어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갑자기 쿵 마음이 내려앉았다. 나는 무얼 기대하고 있던 걸까. 내가 쓴 책이 유일한 넘버원이 되어 블루오션에 던져져 베스트셀러가 되길 바랐을까.


내가 정말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책 쓰고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강의도 다니며 돈도 많이 벌고 싶었던 걸까. 내가 브런치 글과 블로그 글의 종류를 달리해서 쓰려던 이유는? 블로그로 정보성 글을 올리며 사람을 모으고 돈도 모으고 싶어서였을까. 내 생각의 끝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 보았다.


내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삶, 그럼에도 내가 세우는 계획이 힘이 아니라 짐이 되는 거라면 옳지 않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다 내려놓기로 했다. 기도모임 신부님께서 선물로 주셨던 책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읽으며 마음을 다시 잡았다.


"저의 주님,

저를 당신의 현존 안에 있게 해 주시고

당신이 좋아하시는 것을

제가 깨닫고 행할 수 있게 해 주소서."

(p. 54 데레사 성녀가 늘 몸에 익힌 기도)


아이와 함께하는 놀이들은 그냥 내 마음과 경험에 담아두기로 했다. 그러다 깨달음이 느껴질 때면 지금처럼 육아일기에 쓰면 되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미 알찬 정보로 나온 책들을 이용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졌다.


하반기에는 그저 읽고 쓰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추가로 영어공부는 할 거지만(이 또한 특별한 성과물을 목표로 두지 않고 즐기면서) 내면을 살피고 내공을 쌓는 시간을 갖기로 플랜을 짰다. 상반기에 다양한 수업을 들으며 인풋 했다면 이번엔 스스로 학문을 깊어지게 만드는 즐거움을 찾아보기로. 힘을 빼니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꿈지도를 그리다 보니 결국 나에게 중요한 것은 돈보다, 사업보다 가족이고 아이들이었음이 보였다. 언젠가 하고 싶은 공부방, 책방 사업은 계속 뒤로 밀리지만 (ㅎㅎ) 지금은 아이들이 어리니 충실하게 편안한 엄마로 옆에 있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을 마지막으로 나오기 전 잠시 4박 5일의 시간을 떠올려본다. 내가 이 공간에 머물며 얻게 된 귀한 단어, 너그러움.


평화방송을 통해 주일미사를 드렸는데 아프리카 주교님의 강론이 좋았다.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관련해 느껴지는 게 많았다. 그중 마지막에 "예수님을 닮아 우리도 너그러움을 지녀야 합니다"라는 말씀이 그날따라 가슴에 콕 박혔다. 홀로 며칠을 지내어보니 식구들이 나를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들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들에게 얼마나 너그러운 사람이었나.


집으로 돌아와서도 오늘까지 5일째, 다행히 너그러움은 꽤 유지가 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실천하기가 참 힘들었는데, 어제 아침에도 첫찌가 장난하다 촤락 쿠키가 온 바닥에 떨어지고 난리가 났는데도 웃을 수 있었다. "엄마 화 안 났어?" 묻는데 "응, 화 안 났어~ 쏟아질 거 몰랐잖아, 실수잖아~" 하고 말할 수 있는 여유. 확실히 은총을 받았다.


오늘도 나는 너그러움과 숨구멍을 장착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주문을 걸면서 지금 이 시간, 내게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고 감사한다. 가족들에게도 특히 나 자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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