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너를 더 사랑하기에
요즘 들어 더 엄마 껌딱지가 된 우리 둘째. 뭐만 하면 다 “엄마랑!!”이다. 밥 먹을 때도 엄마랑, 치카치카도 엄마랑, 잠자는 것도 엄마랑! 후.
엊그제 둘째가 자기 전에 갑자기 뭐가 생각났는지, “그때~~ 비 오는 날 내가 넘어져서 울었어~~” 하며 말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아파서 울었냐고 물으니 “엄마가 보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닌가.
새벽마다 일어나 엄마를 찾으며 울 때도 아침에 정신 차리고 왜 울었는지 다시 물으면 늘 대답은 “엄마가 보고 싶어서”였다. 그때는 그 말이 참 사랑스러웠는데 오늘 아침은 달랐다.
어린이집 방학으로 24시간을 두 아이와 붙어 지내다 보니 나도 숨구멍이 필요했다. 틈틈이 엄마 아빠와 남동생 찬스를 쓰며 쉬었지만 고요히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 새벽은 부디 잘 자주길 바랐다. 그러나 결국 둘째는 뒤척이다 엄마가 옆에 없는 걸 기똥차게 알고 울기 시작했다. 5:40 am. 남편도 소용없었다. 들어가 재우며 나도 자는 척 이불을 뒤집어쓰고 휴대폰을 만졌다. 잠이 든 것 같아 다시 나와 차를 끓이고 테이블 위에 놓은 순간 또 일어나는 둘째.
포기하자 싶어 옆에 누워 잠이 들려는데 이번엔 본인이 잠이 안 온다며 거실로 나가자고 했다. 두 시간 동안 생산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요, 제대로 잠을 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 너무 짜증이 났다. “아까는 들어오라더니 왜 이제는 또 나가자는 건데!” 하며 나도 화를 냈다.
아무 죄가 없는 남자 3인방에게 접시를 탁! 숟가락을 탁탁탁 놓으며 아침을 차려주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기 물을 맞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왜 저렇게 요즘 ‘엄마만 엄마만’일까. 첫째가 둘째만 했을 때를 생각해 보니 요즘 시기가 그런 것 같았다. 그때도 6개월이 된 둘째보다 자꾸 깨서 울고 나를 찾는 건 첫째였으니까. 내가 새벽 요가를 가지 못했던 이유도 자꾸 나만 찾아 우는 첫째를 남편이 달래는 게 스트레스였으니까.
그런데다 말도 느리고 동생까지 생겨 불안도가 높았던 첫째는 틱까지 왔었다. 하. 그럼 이 시기가 엄마를 극도로 찾는 시기인 건 맞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자기 계발을 하기에 나는 지금 너무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던 중 문득 미래를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를 이렇게 떼어놓고 싶어 하면서, 제발 나만의 시간을 주라고 하면서. 몇 십 년 뒤 아이가 독립을 하거나 결혼을 했을 때 내가 이 아이가 사무치게 보고 싶어 지면 어떡하지. 지금 둘째가 나를 이렇게 애타게 바라보는 것처럼, 나도 아이가 보고파 애가 타는데 그때 아이가 지금의 내 마음과 같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뜩 차려졌다.
‘지금 아이를 더 받아줘야 하는구나, 더 많이 사랑하고 보듬어줘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니 요즘 둘째가 깨는 시간이 내가 딱 새벽활동을 하는 5시에서 6시 사이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1-2월은 오후에 내 일이 많지 않으니 새벽에 하려고 한 공부를 뒤로 미루고 아이 옆에 있어주기로. 뒤척이다 깼을 때도 엄마가 옆에 있다고 안심시켜 주기로.
비록 ‘아름다운 새벽’ 활동을 못할지라도 6시 기상으로 플랜을 변경하고 나도 그동안 못 잔 잠을 보충하기로 결정하니 훨씬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1년만 지나도 어느 순간 아이는 커서 엄마가 안 보여도 곁에 존재한다는 걸 믿음으로 알게 될 테니까.
이제요즘들어 더 엄마 껌딱지가 된 우리 둘째. 뭐만하면 다 “엄마랑!!”이다. 밥 먹을 때도 엄마랑, 치카치카도 엄마랑, 잠자는 것도 엄마랑! 후.
엊그제 둘째가 자기 전에 갑자기 뭐가 생각났는지, “그때~~ 비오는 날 내가 넘어져서 울었어~~” 하며 말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아파서 울었냐고 물으니 “엄마가 보고싶어서” 하는 게 아닌가.
새벽마다 일어나 엄마를 찾으며 울 때도 아침에 정신차리고 왜 울었는지 다시 물으면 늘 대답은 “엄마가 보고싶어서” 였다. 그때는 그 말이 참 사랑스러웠는데 오늘 아침은 달랐다.
어린이집 방학으로 24시간을 두 아이와 붙어 지내다보니 나도 숨구멍이 필요했다. 틈틈이 엄마 아빠와 남동생 찬스를 쓰며 쉬었지만 고요히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 새벽은 부디 잘 자주길 바랐다. 그러나 결국 둘째는 뒤척이다 엄마가 옆에 없는 걸 기똥차게 알고 울기 시작했다. 5:40am. 남편도 소용없었다. 들어가 재우며 나도 자는 척 이불을 뒤집어쓰고 휴대폰을 만졌다. 잠이 든 것 같아 다시 나와 차를 끓이고 테이블 위에 놓은 순간 또 일어나는 둘째.
포기하자 싶어 옆에 누워 잠이 들려는데 이번엔 본인이 잠이 안온다며 거실로 나가자고 했다. 두시간 동안 생산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오, 제대로 잠을 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 너무 짜증이 났다. “아까는 들어오라더니 왜 이제는 또 나가자는 건데!” 하며 나도 화를 냈다.
아무 죄가 없는 남자 3인방에게 접시를 탁! 숟가락을 탁탁탁 놓으며 아침을 차려주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기 물을 맞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왜 저렇게 요즘 ‘엄마만 엄마만’일까. 첫째가 둘째만했을 때를 생각해보니 요즘 시기가 그런 것 같았다. 그때도 6개월이된 둘째보다 자꾸 깨서 울고 나를 찾는 건 첫째였으니까. 내가 새벽 요가를 가지 못했던 이유도 자꾸 나만 찾아 우는 첫째를 남편이 달래는 게 스트레스였으니까.
그런데다 말도 느리고 동생까지 생겨 불안도가 높았던 첫째는 틱까지 왔었다. 하. 그럼 이 시기가 엄마를 극도로 찾는 시기인 건 맞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자기계발을 하기에 나는 지금 너무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던 중 문득 미래를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 나를 보고싶어 하는 아이를 이렇게 떼어놓고 싶어하면서, 제발 나만의 시간을 주라고 하면서. 몇 십년 뒤 아이가 독립을 하거나 결혼을 했을 때 내가 이 아이가 사무치게 보고싶어지면 어떡하지. 지금 둘째가 나를 이렇게 애타게 바라보는 것처럼, 나도 아이가 보고파 애가 타는데 그때 아이가 지금의 내 마음과 같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뜩 차려졌다.
‘지금 아이를 더 받아줘야 하는구나, 더 많이 사랑하고 보듬어줘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니 요즘 둘째가 깨는 시간이 내가 딱 새벽활동을 하는 5시에서 6시 사이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1-2월은 오후에 내 일이 많지 않으니 새벽에 하려고 한 공부를 뒤로 미루고 아이 옆에 있어주기로. 뒤척이다 깼을 때도 엄마가 옆에 있다고 안심시켜주기로.
비록 ‘아름다운 새벽’ 활동을 못할지라도 6시 기상으로 플랜을 변경하고 나도 그동안 못잔 잠을 보충하기로 결정하니 훨씬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1년만 지나도 어느순간 아이는 또 커서 뒤척이다 엄마가 안보여도 내가 곁에 존재한다는 걸 믿음으로 알게 될테니까.
깨달을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지금도 늦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너희들이 너무 보고싶어서”라고 말했을 때 엄마를 꼭 안아줄 수 있는 아들들로 키우고 싶다. 그러려면 나부터 스윗하게 가자.
이제라도 깨달을 수 있어 감사하다. 지금도 늦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너희들이 너무 보고싶어서”라고 말했을 때 엄마를 꼭 안아줄 수 있는 아들들로 키우고 싶다. 그러려면 나부터 스윗하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