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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진실이 되는 날이 올까

거짓말이 될 줄 몰랐는데, 미안해 첫째야.

by 반짝이는 루작가

"엄마, 오늘 엄마네 학교에선 무슨 거 나와? 엄마네도 바나나 나온대? 엄마네도 짜장밥 나와?"

"응.. 그런 음식들 엄마 학교에서도 나와~~^^;“


실제로 나는 학교 선생님이 아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도 아니다. 작년은 내 나름의 안식년을 취했고, 올해 마음만 먹으면 쉽게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재작년까지는 분명 학교에 서류를 쓰면 한 번에 합격이었는데, 이렇게 일 년 새 학교로 들어가는 문이 좁아질 줄 몰랐다.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미안했다. 그래서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게 일이 커졌다. 철 모르게 듣던 첫째는 이제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라 인지하고 기억에 심어두었다. 내 말을 찰떡같이 믿게 된 아이에게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가끔씩 첫째가 나의 학교 생활에 대해서 궁금해 물을 때면, 진짜처럼 이야기는 해주지만 마음속에선 애가 탄다. 학교에서 일을 할 수 있기는 한 걸까.


공교육이 아니면 사교육에서라도 일을 해야지 싶었는데, 나는 참 이상하게 사교육을 통해 받는 돈이 부담스럽다. 공교육은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 속에서 내 할 일을 제대로 하면 된다는, 아이들을 정성으로 돌보자는 마음이 편안하게 든다면 사교육은 뭔가 두렵다. 너무 적게 받으면 적게 받는 대로 학부모들이 무시한다는 말도 들었고, 많이 받자니 학부모의 등골을 빨아먹는 걸까 봐 싫다. 사교육은 성적을 올리든 영어를 재미있게 만들든 뭔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야 할 것만 같아 짐스러운 마음이 든다.


올해가 되면서 학교에 방과 후 강사, 시간 강사, 기초학력 협력 강사 등 지원서를 낼 때마다 한 번을 붙여준 적이 없는 학교였다. '내가 다시는 지원하나 봐라!' 하며 야심 차게 사교육의 길로 돌아서면서도 다음 날이면 교육청 채용공고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왜 학교를 놓지 못하는 걸까.


대학 시절 철학과 영어영문학 복수 전공에, 교직이수에, 국제학교 보조교사 경력에, 교육대학원 졸업에.. 이 정도 이력이면 서류는 무조건 통과일 거라 생각한 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학교 시장은 지금 경력으로 인정받는 강사들이 매우 많고, 그분들이 학교에 계속 머무르는 이상 신입 강사가 들어갈 자리는 좁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어제도 기초학력 협력강사 공고를 보고 서류를 내러 갔더니 1명 모집에 11명이 지원해 있었다. 아마 오늘까지 접수가 가능했으니 지원자는 더 많았을 거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역시나 '기초학력 미선정'으로 메시지가 왔고 나는 또 불합격자가 되고 말았다. 언제면 아이의 질문에 당당하게 나의 학교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우울함은 묻어두고 저녁을 먹은 후 아이들과 신나게 마트놀이를 했다. 전업맘으로서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순간이다. 눈앞에 보이는 장난감 케이크와 크로와상, 포도와 딸기 등 이 음식들이 손만 갖다 대면 진짜로 변하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이 앞에 수두룩 깔려있는 가짜 돈들이 진짜 내 돈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엄마의 속도 모르고 아이들은 신이 나 마트 사장님이면서 음식도 공짜로 갖다주고, 손님한테 돈도 팍팍 건네준다. 어쩌면 비현실이 현실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현실을 비현실처럼 즐겁게 살아가는 게 더 현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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