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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나의 여섯 살 장남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기특한 아이

by 반짝이는 루작가

남편이 출장을 떠난 지 4일 차. 출장 가기 전부터 편도염으로 시작한 둘째의 감기와 열은 폐렴으로까지 커져 아이를 힘들게 했다. 주말까지 껴있어 남편 없는 육아가 얼마나 두려웠던지.


다행히 잠깐씩 친정 부모님 찬스를 돌아가며 쓰긴 했지만, 그래도 육아의 8할은 내 몫이었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어디 나가는 것도 무리수였고 날씨까지 안 좋아 동네 놀이터도 갈 수 없는 상황. 파워 J인 나는 계획을 짜야 마음이 편했지만 이번 주말만큼은 아무 일정도 정해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잘 먹는 아이가 몸이 힘드니 뭘 먹지도 않고. 힘도 없고 짜증만 내는 둘째 옆에서 하녀처럼 시중을 들고 비위를 맞췄다. 아침을 먹고 정리하며 그릇 하나 씻으면 울고, 가서 달래어 다시 수돗물을 틀면 또 징징 보채며 우는 아이. 집안일이 대수가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은 해야 하지 않나. 이를 악 물고 절대 화는 내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다시 가서 아이를 달래고 돌아서는데 또 짜증의 시동을 거는 게 느껴졌다. 그때 옆에 있던 첫째가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줄까? 빨간색만 찾는 거야? “

“응! “


첫째가 뒤적거리며 상자 안에 있는 빨간 막대기들을 찾아 주었다. 둘째도 나도 가득 올라왔던 열기가 첫째 덕분에 가라앉던 순간! ‘내 편이 없어 그리웠는데, 여기 또 다른 내 편이 있었네.’


동생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 한창 재밌게 놀기에 열심히 밀린 집안일을 했다. 그런데 너무 조용해서 몰래 캠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베란다로 연결된 문을 열고 창밖을 구경하던 형제들! 둘이 꼭 장난꾸러기 짓을 할 때에는 이렇게 한 마음 한 뜻이 된다.


그 이후에도 약을 먹을 때마다 쓴 약이 너무 싫어 울고불고 난리 치는 둘째에게 “약을 잘 먹으면 형아가 책 읽어줄게! 약 잘 먹어야 병원에 안 가~~“하며 동생을 타이르는 첫째를 보며 언제 이렇게 커버렸는지 감개무량하다.


남편의 빈자리가 첫째 덕분에 채워진다 생각했는데 오늘 새벽부터 샤워기는 부서지지, 멀쩡히 거실 벽에 붙어있던 전등은 떨어지지. 하느님이 남편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려고 나의 교만을 누르시나 보다.


다행히 오늘부턴 둘째의 컨디션도 좋아지고 있다. 건강히 잘 지내주는 첫째에게도 고마움을 느끼며, 남편이 돌아오면 내가 아프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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