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귀한 아이라는 것을
내가 학교에서 돌보고 있는 아이. 5학년이지만 한국말을 하는 게 어눌하다. 아직 제대로 글을 이해하지도 쓰지도 못한다.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미취학인 우리 아이들을 보는 것처럼 순수하다. 나는 특수 돌봄 봉사자가 아니지만, 특별한 이 아이를 가까이에서 도와주게 되었다.
점점 나와의 친밀도가 높아지는지 교실에 들어가면 나에게 환한 미소를 띄워 주었다. 그러나 손가락을 빨다가 나를 만지며 “선생님!”하고 부를 때, 음악시간에 자꾸 거울을 보며 손으로 내 몸을 건드릴 때, 일대일로 시험 보는 걸 도와줘야 했던 상황에서 장난으로 나의 허벅지를 툭툭 칠 때는 나도 마냥 아이를 반갑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으나 생김새는 청소년이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지체장애가 있는 분들을 도우러 갔다가 같이 먹는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 불편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장애가 있는 사람을 가까이서 만난 적이 없어 의식적으로는 ‘정성껏 돌봐야지, 사랑을 주어야지’ 하면서도 무의식에선 어렵고 거부감이 드는 게 솔직한 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어른이고, 돌봄 선생님의 입장에서 아이를 만난 상황이다. 한 명이라도 정성껏 아이를 봐줘야 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입장을 바꿔 이 아이가 우리 아이라면,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 혹은 학교에서 선생님을 만나는 상황을 생각하니 나의 태도에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었다.
어제는 수학체험 시간에 내가 먼저 아이의 손을 잡아 나무블록에 풀을 붙이는 걸 도와주고, 오늘은 신나게 공을 던진 아이에게 칭찬을 가득 담아 하이파이브를 했다. 보드랍고 기다란 하얀 아이의 손가락이 굵어지고 단단해질 때, 아이의 몸과 마음도 단단해져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자꾸 다른 데서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들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이 아이 옆에서 관심을 주고 사랑을 더욱 전해주련다. 아이의 부모마음이 어떠할지 또한 헤아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