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면접다운 면접을 보기까지

나의 자존감이 올라갔다

by 반짝이는 루작가

몇 번째 면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올해 들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수도 없이 면접을 봤다. 방과 후 강사, 기초학력 협력강사, 교육활동봉사자 등 가리지 않고 계속 지원을 했다. 내가 이제까지 지원서를 냈던 곳들 중 반은 서류에서 탈락이었고 반은 면접까지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사히도 지난달 말에 내가 관심을 갖던 초등학교에서 교육활동봉사자로 일하게 되어 기쁘게 다니고 있다.


일하랴, 아이들 챙기랴, 집안일하랴 나만의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 오후에 다른 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친한 대학원 동기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자신의 학교에서 급하게 시간강사를 찾는데 해줄 수 있는 지를 묻는 것이었다. 그 학교를 다니게 될 때의 장단점을 비교하며 종이에 썼다. 동기가 근무하는 곳은 중학교. 그래도 요즘 중학생인 시댁 조카 영어를 봐주고 있어 중학생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종이에 쓴 걸 보니 장점이 훨씬 많았고, 기회가 왔음에 부딪쳐보자는 심정으로 하겠다 했지만 결국 무산이 되었다. 내 수업 시간을 맞춰주느라 다른 선생님들의 수업 시간을 바꾸는 게 어렵다는 이유였다. 나 말고 지원한 다른 선생님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허무했다. 고민하면서 즐거운 상상을 했던 나 자신이 싫었다. 동기의 미안하다는 말에 괜찮다고는 했지만 영 서운한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바라지도 않던 일을 바라게 해 놓고, 서류들 작성하고 준비하며 시간은 다 뺏어놓고 결국 못 하게 된 상황이 야속했다. 그러나 그때 시간강사 자리를 지원하며 눈여겨보던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이 학교 또한 중학교였고 내가 현재 관심을 갖는 학교다. (첫째의 초등입학이 가까워지면서 요즘 IB스쿨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일주일에 한 번 학생들을 돌봐줄 학습도약튜터를 뽑는 공고였다. 제일 걸리는 게 시간이었다. 수업이 5시에 끝나니 아이들 어린이집 하원이 문제였다. 친정엄마 찬스로 여쭤보았으나 엄마도 지금 하시는 일이 있어 확답을 못해주셨고, 퇴직하시고 소일거리를 찾아 하고 계시는 아빠께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애매하셨을 텐데도 도와주겠다고. 그러면서 전화 끊기 전에 "아유~ 그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하시는 아빠의 응원이 매우 힘이 됐다.


지난주 금요일까지가 서류 마감이었고, 화요일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아 또 탈락이구나 싶었다. 내가 서류를 내러 갔을 때 이미 나보다 2명이 더 있었고, 내 뒤로도 마감 시간이 남아있어 분명 몇 명은 더 제출을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1명 뽑는 자리였기에 이번에도 아니구나, 마음을 온전히 다 비웠다. 나는 그냥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자고, 아이들 육아에 더 신경 쓰자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러나 다음날 늦은 오후에 문자가 왔다. 서류가 통과됐으니 금요일 오후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메시지였다. 그 면접을 어제 보러 갔다. 면접에 자신 있는 나였지만 자꾸 탈락이 되던 탓에 긴장을 했다. 오늘은 어떤 질문들이 종이에 써져 있을까, 영어로도 물어볼까,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주겠다고 할까. 계속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예상 답안을 생각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면접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책상 위에는 아무런 종이가 없었다.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시는 선생님 세 분 뿐이었다. 정성껏 나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며 질문을 해주셨다. 8개월밖에 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내 경력도 언급해 주시고, 자기소개서 안의 내용들을 물어보셨다. 대답을 통해 진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이런 사람이었지.


질문 세 개에 고심하며 답을 내놓았지만 막상 면접실을 나오니 아쉬움이 가득했다. 쓸데없는 얘기까지 내뱉은 건 아닌지, 이 말을 할 걸 왜 생각을 못했는지. 그러나 후회보다 감사의 마음이 훨씬 컸다. 선생님들께 내 진심을 온전히 다 말씀드렸고 나의 이야기를 또한 진심으로 들어주신 것에서 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탈락일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 다시 나의 자존감을 찾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의식적으로 여유를 챙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