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과 '골목상권'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타당성과 그림자

전통시장 정책의 구조적 한계가 명확해지면서 정책의 무게중심은 소위 로컬크리에이터라 불리우는 '창의적 소상공인'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들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상인을 넘어 자신만의 철학과 콘텐츠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가치 창출가(Value Creator)로 주목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공은 개별 점포의 성장에 그치지 않고 주변 상권을 활성화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강력한 파급효과를 가진다. 저성장 시대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하는 정책적 관점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잠재력을 지닌 창의적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경제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필수 과제였다.


이러한 정책적 필요성 위에서, 2020년대 들어 중기부의 정책 방향은 로컬과 골목상권으로 급격히 선회했다. '로컬 크리에이터', '글로컬 상권', '동네상권발전소'와 같은 새로운 정책들이 등장했다. 이 정책들의 핵심은 민간과 지역 주도로 지속가능한 상권을 조성하는 것이다.



즉 정부가 하드웨어를 깔아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민간 주체(로컬크리에이터)가 지역의 고유한 자원과 문화를 발굴하고 이를 기반으로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상권을 활성화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은 여러 측면에서 타당성을 갖는다. 경제적으로는 단순 가격 경쟁을 넘어 '가치 소비'와 '경험 소비'를 중시하는 현대 소비 트렌드에 정확히 부합한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콘텐츠, 스토리, 브랜딩)에 투자함으로써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청년 창업가와 같은 새로운 주체의 유입을 촉진하여 상권에 역동성과 다양성을 불어넣는다. 이는 획일화된 전통시장 정책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새로운 물결에도 어두운 그림자는 존재한다.


첫째, 젠트리피케이션 유발 가능성이다. 외부 자본과 트렌디한 상점들이 유입되면서 상권이 활성화되면 임대료가 급등하고 결국 그곳을 지켜온 기존의 영세 상인들이 내몰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자율 상권관리모델을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그 실효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둘째,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위험이다. 로컬 브랜딩, 혁신적 콘텐츠 제작 등은 고도의 기획력과 마케팅 역량을 요구한다. 이는 소수의 스타 로컬 크리에이터에게만 혜택이 집중되고 대다수의 평범한 상인들은 정책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경기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민간 플레이어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 반면 공공 부문의 역할이 미미하여 공공성이 결여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정책이 일부 계층의 성공 신화를 만드는 데 그치고 상권 전체의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는 실패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셋째,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다. 민간의 창의성과 자율성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모델은 정부 지원이 끊겼을 때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 공공이 장기적인 비전과 안정적인 시스템을 제공하는 역할 없이 단기적인 프로젝트성 지원에 그칠 경우 반짝 유행으로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통시장의 배타적인 환경은 창의적인 소상공인들을 '상권 유목민'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기성 상권의 높은 진입장벽을 피해 임대료가 저렴한 낙후된 골목으로 숨어들었고 그들만의 독특한 콘텐츠로 새로운 상권을 일구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성공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불러왔다. 상권이 뜨면 임대료가 치솟고 결국 그 상권을 만든 주역들은 다시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떳다방'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는 지역기반 네트워크의 부재와 상권의 빠른 소비 트렌드 변화 속에서 이들이 한곳에 뿌리내리기 어려운 구조적 현실을 보여준다.


결국 중기부의 정책 전환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뒤늦은 정책적 응답이었다. 전통시장이 스스로 혁신의 기회를 걷어차고 신규 창업자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잠재력 있는 창업가들이 모여드는 새로운 골목으로 눈을 돌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정책은 더 이상 '닫힌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열린가능성'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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