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에서 혁신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실핏줄이자 민생경제의 근간인 중소상공인은 지금 복합적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고금리와 소비 위축의 거시적 압박, 그리고 디지털 전환이라는 구조적 도전이 동시에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 정책은 단순한 시혜를 넘어 경제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변수가 된다.
한국 중소기업 정책의 역사는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과 그 궤를 같이한다. 1966년 제정된 `중소기업기본법`은 정책의 법적 토대를 마련한 상징적 사건이었으나 초기 정책은 선언적 수준에 머물렀다. 당시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이었고, 그 중심에는 대기업이 있었다.
따라서 중소기업 정책의 핵심 기조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 속에서 상대적 약자인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시혜적 관점에 가까웠다. 이는 일본의 정책 모델을 상당 부분 답습한 결과이기도 했다.
1980년대에 들어 경제가 성장하고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중소기업 정책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균형 격차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1986년 중소기업창업지원법 제정과 1989년 기술신용보증기금 설립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중소기업을 단순한 보호대상을 넘어 기술과 창업을 통해 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할 수 있는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정책의 중심은 대기업>>>>>하청 구조 속에서 중소기업의 생존을 지원하는 데 머물러 있었다.
소상공인 정책이 본격화 되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를 맞은 1990년대 후반부터라 할 수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한국 중소상인 정책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었다. 대기업의 연쇄 부도와 대규모 구조조정은 대량 실업 사태를 낳았고 생계를 위해 창업 시장에 뛰어드는 이들이 급증했다. 이로 인해 이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소상공인 문제가 사회적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두 가지 핵심 정책을 추진했다. 첫째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1997)을 통해 IT 기반의 벤처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소상공인지원센터 설립과 무담보 대출 확대 등 실직자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소상공인의 생존을 돕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중소기업 정책은 소상공인이라는 구체적인 정책 대상을 명확히 설정하고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책의 초점은 대기업과의 관계 설정으로 이동했다. 참여정부는 상생협력을, 이명박 정부는 동반성장을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이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면서 발생하는 불공정 거래 관행과 기술 탈취 문제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양자 간의 협력을 통해 경제 생태계를 건전하게 발전시키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정책들은 중소기업을 단순한 보호 대상에서 대기업의 파트너이자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주체로 격상시켰다. 이처럼 외환위기를 거치며 중소상인 정책은 '보호'를 넘어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과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축을 갖추게 되었다.
2017년 7월 기존의 중소기업'청'이 부로 승격된 것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정책이 대한민국 국정 운영의 핵심 의제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공정경제, 소득주도성장, 제2벤처붐이라는 국정 기조 아래 중소상공인분야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기술탈취 근절을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강화, 그리고 창업 예산을 6배 이상 증액하는 등 정책은 양적으로 크게 팽창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팽창이 반드시 정책의 질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역대 정부의 중소벤처 정책을 평가한 보고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시기 정책의 수는 박근혜 정부에 비해 2.6배나 증가했지만, 정책의 파급성, 지속성, 인지도를 종합한 정책 점수는 5.6점으로 역대 정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또한 노동생산성, 혁신기업비중 등 핵심 성과 지표는 오히려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정책 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현장의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나 성과 창출로 이어지는데 한계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정책의 양과 효과 사이의 괴리는 정책 설계와 집행 과정의 효율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