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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 오페라 축제, 줄리엣의 집

by 권혜경

별이 빛나던 아름다운 야외 오페라 무대!


원래 처음 계획으로는 베네치아에서 곧장 밀라노로 갈 생각이었다. 두 도시 모두 볼 것도 많고 아름다운 곳이라 정작 중간에 위치한 소도시 베로나는 선택의 대상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 발견하게 된 베로나 오페라 축제 광고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인 ‘아레나 디 베로나’(Arena di Verona)에서 여름밤에 열리는 야외 오페라 축제라니! 달빛과 별빛 아래 환히 불이 켜진 화려한 무대와 아름다운 선율이 넘치는 원형극장에서의 오페라 공연을 보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일어났다. 마침 일정에 맞게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가 공연 목록에 있었다. 코로나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막 통과해 다시 외국 여행이 시작되던 2023년 초입이었다.


밀라노의 호텔 예약을 조금 변경해서 하루를 베로나에 머물며 오페라 축제를 보기로 했다. 베로나에서 1박을 하기 위해 호텔을 찾았지만 이미 숙소 대부분이 예약 완료 상태였다. 다행히 오페라가 공연되는 아레나 근처 B & B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여름철 성수기 이탈리아나 프랑스 도시의 숙박비는 엄청나다!


베로나 오페라 축제는 1913년 베르디의 ‘아이다’(Aida)로 시작해 세계 최초의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매년 6월에서 9월 사이 베로나 역사 지구에 위치한 로마 시대 원형극장(1세기에 지어졌다고 함)에서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린다. 해마다 다양한 오페라 공연이 이어지고 있는데 ‘아이다’ ‘나부코’ ‘카르멘’ 등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공연된다.


KakaoTalk_20251125_174815195_04.jpg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가 시작되면 저 넓은 아레나가 관객들로 꽉 찬다.


밤 9시부터 공연이 시작되는 터라 아레나 근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하는 사람들 대부분 쟈켓과 원피스를 갖춰 입고 있어서 다들 오페라를 보러 가는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갖고 온 옷 중 원피스를 챙겨 입고 귀걸이와 반지까지 착용하였다. 외국 여행을 할 때 다소 격식을 갖춘 옷 한 두벌 정도는 챙기는 편이다. 특히 유럽 국가들을 여행할 때 공연을 관람하거나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 옷을 챙겨 입을 필요가 있어서이다.


저녁 8시쯤 원형극장에 들어서자 벌써 사람들이 많이 입장해 있었다. 3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주 넓은 공간이었다. 보고 싶었던 공연이라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한 좌석은 아레나 하단 쪽이었다. 까마득한 아레나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입장료는 저렴해진다. 훨씬 더 비싼 자리인 무대 앞 바닥 자리에는 멋진 드레스와 턱시도까지 차려입은 관객들이 앉아 있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오페라 출연자들이 아름다운 무대 의상을 차려입은 채 객석으로 내려와 손을 흔들며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KakaoTalk_20251125_174459258_01.jpg 무대가 시작되기 전 오페라 출연자들이 내려와 객석을 돌며 인사를 했다.


드디어 정각 9시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 시작 전 관객들에게 무대 장면을 촬영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가 있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과 음악이라 보고 듣기에 편했다. 유명한 ‘축배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무대 위 파티 장면은 아름다운 세트와 화려한 의상이 어우러져 멋지게 연출되었다. 특히 다양한 색감을 사용한 무대 의상은 내가 봐 온 기존의 오페라 무대보다 훨씬 더 화려해서 ‘정말 이곳이 이탈리아구나!’라는 걸 절감할 수 있었다.


KakaoTalk_20251125_174459258_03.jpg 공연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서 마지막 인사하는 모습을 찍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성악가들의 노래 역시 또렷이 잘 들렸다. 마이크 시설을 하지 않아도 음향이 잘 전달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한밤중 머리 위로는 밝은 달과 별들이 비추고, 눈으로는 아름다운 무대를 바라보며 귀로는 익숙한 선율의 아리아를 듣고 있으니 너무 행복했다.


정말 일생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완벽한 순간이지 않을까!




다음 날 오전 베로나를 떠나기 전에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을 찾았다. 베로나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의 배경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줄리엣의 집’으로 알려진 곳은 13세기 때 지어진 중세 건물로 Cappello 가문의 집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 중반 베로나 시가 이 집을 개조해 ‘줄리엣의 집’으로 이름 붙였다.


KakaoTalk_20251125_174815195_03.jpg 줄리엣의 집. 오른쪽 상단에 발코니가 있어 정말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을 연상케 한다.


발코니가 있어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 <Letters to Juliet>(2010)이 이곳을 배경을 하고 있어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다. 정원에는 줄리엣의 동상이 서 있었다. 여행객들마다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믿음 아래 그녀의 왼쪽 가슴을 만지며 사진을 찍었다(최근 뉴스에 따르면 줄리엣의 동상 왼쪽 가슴 부분에 작은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줄리엣의 동상. 특히 가슴 부분이 반질반질하다.


















'줄리엣의 집' 벽면에 가득한 사랑의 낙서들



















다들 베로나에 오면 ‘줄리엣의 집’을 찾아간다. 그곳이 진짜 줄리엣의 집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냥 방문해서 사랑의 편지를 남기고 또 줄을 서서 줄리엣의 동상 왼쪽 가슴을 만지며 사진을 찍는다. 허구의 장소라 하더라도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형식이든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또 자신의 사랑이 영원하길 꿈꾼다.


‘줄리엣의 집’은 영원할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사랑이 싹트고 머무르는 한!


밖으로 나오니 에르베 광장에 장이 서 있었다. 나도 시원한 과일 컵을 하나 사서 오래된 소도시의 그늘 바닥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KakaoTalk_20251125_174815195_02.jpg 베로나 에르베 광장의 상설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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