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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아이레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by 권혜경

보르헤스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우리나라와 지도상 가장 대척점에 있는 남미,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라고 하면 으레 가장 먼저 축구와 탱고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스페인어로 ‘깨끗한 공기’라는 뜻을 지닌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며칠은 여행자의 선입견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숙소를 시내 중심가인 공화국 광장 오벨리스크 근처로 잡은 덕분에 대통령궁이나 5월 광장, 에바 페론(1919-1952)의 무덤이 있는 레콜레타 묘지까지 줄곧 걸어서 다녔다. 고혹적인 춤 탱고를 탄생시킨 카미니토 지역도 찾아보았고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인 ‘카페 또르또니’에서 탱고 공연도 보았다. 옛 스페인 식민통치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럽식 건물과 잘 정비된 도로는 도보 산책을 쾌적하게 만들었고, 저녁이면 화려하게 불을 밝히는 공연장들은 이 도시가 남미문화의 중심임을 실감하게 했다.


KakaoTalk_20251123_183419795_10.jpg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중심 오벨리스크가 있는 공화국 광장


KakaoTalk_20251123_183419795_02.jpg 탱고가 탄생된 카미니토 지역의 화려한 원색 건물들


하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89-1986)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도시이다. 경험과 환상의 세계를 뒤섞은 작품들로 마술적 리얼리즘의 형성과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발달에 기여한 보르헤스는 『백 년의 고독』을 쓴 마르케스(Gabriel Garcia Márquez, 1928-2014)와 더불어 남미를 대표하는 문학가이다. 유명한 콜론 극장 옆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보르헤스의 사진과 인용된 그의 시구는 이 도시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이 어떠한지를 짐작하게 했다.


KakaoTalk_20251123_183419795_09.jpg 콜론 극장 옆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보르헤스의 사진과 그의 글


보르헤스가 활동하던 시기는 바로 페론 정권기와 맞물려 있다. 알려진 대로 후안 페론(Juan Domingo Perón, 1895-1974)은 아내 에바 페론의 탁월한 대중 연설과 인기 덕분에 1946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들은 외국 기업들을 국영화하고 또 복지 혜택을 늘렸지만 결국 금융 위기를 초래하였다.


이 시기 다른 지식인들과 더불어 페론 정권을 비판하던 보르헤스는 공공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다 쫓겨나게 된다. 다행히 10여 년 후 페론이 실각하자 보르헤스는 1955년 국립도서관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그는 18년간 관장을 맡았으나, 젊을 때부터 진행된 약시 때문에 도서관장으로 일하던 시절 거의 시력을 잃었다.


그가 42세 때 집필한 단편「바벨의 도서관」(1941)은 시력을 잃은 한 늙은 사서의 독백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육각형의 진열실로 무한히 구성된 거대한 도서관을 우주나 세계의 모습으로 치환하고 있다. 도서관은 보르헤스가 도서관장으로 일을 하던 실제 공간이자 그의 문학적 상상력과 철학이 발현된 중심이었다.


fsaOKwRmHcIWDklVS3F9oHVmET2EH7cyVCnvRTwP4TH46K4hqOFCCmeO4xaHfgQH8ZrMUjIjiXY6o5EBHvspfg.webp <바벨의 도서관>
단편집 『픽션들』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육각형 진열실들로 이루어진 부정수, 아니, 아마도 무한수로 구성되어 있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픽션들』, 민음사, p. 97)


“‘도서관’의 모든 사람들처럼 나는 젊은 시절 여행을 했다. 나는 한 권의 책, 아마도 편람 중의 편람일 책을 찾아 돌아다녔다. 이제 내 눈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조차 알아볼 수 없고, 나는 내가 태어난 육각형의 방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픽션들』, 민음사, p. 98)


팔레르모 공원 부근 국립도서관을 애써 찾은 것도 보르헤스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다. 현재의 도서관은 1992년 완공된 것으로, 보르헤스가 관장으로 재직할 때 이전을 추진하였으나 완공 당시에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거대한 건물 외벽에 마르케스의 모습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있어 눈길을 끌었다.


KakaoTalk_20251123_183419795_06.jpg 팔레르모 공원 근처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도서관 앞뜰에는 보르헤스를 기리는 기념비와 그의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었고, 도서관 내부에도 보르헤스의 초상과 그가 쓰던 집기류가 전시되어 있었다. 실명이라는 장애 속에서도 관장으로 재직하며 아르헨티나의 현대문학을 일군 그의 집념이 느껴졌다.


monument-to-acclaimed-author-jorge-luis-borges-stands-outside-national-library-buenos-aires-monument-to-acclaimed-156336894.jpg 국립도서관 뜰에 있는 보르헤스의 조각상 (출처: Dreamstime.com)


보르헤스의 문학적 상상력은 현대 문학 및 예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1980)에서 중세 수도원의 시각 장애인 사서가 등장하는데 이는 보르헤스를 염두에 두고 만든 인물이라고 한다. 또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Intestellar, 2014)에서 'tesseract' 즉 4차원 정육면체의 공간이 마치 무한히 연속되는 서고처럼 보이는데 바로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이미지를 한층 더 고양시킨 것은 시내에 자리 잡은 ‘엘 아테네오’ 서점이었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입구를 지나 서점에 들어선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1919년에 세워진 오페라 극장의 내부를 고스란히 살려 2002년 서점으로 다시 연 아름다운 공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51123_183419795_05.jpg 오페라 극장을 개조한 엘 아테네오 서점


멋진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천정 아래 서가가 들어차 있었고 자주색 커튼이 드리워진 무대는 커피숍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공간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엄청난 인파에 더 놀랐다. 서가는 물론 서점 구석구석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730여 개의 서점이 있어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서점이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중고서적과 희귀본을 다루는 서점도 100개가 넘다 보니 ‘책의 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실제로 도심을 지나치다 보면 군데군데 크고 작은 서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카페를 겸한 서점들도 눈에 띄었다.


이 도시의 탄탄한 문화적 기반을 형성하는 데 서점이 공연장 못지않게 주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형 인터넷 서점에 밀려 중소 규모 오프라인 서점들이 상대적으로 고전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떠올라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1950년대 페론주의 정권의 등장과 실각, 그리고 70년대 중반의 군부 쿠데타 등 굴곡 많은 현대사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혹적인 도시의 모습을 지켜왔다. 이 도시를 굳건히 지켜 온 것은 바로 이 도시의 사람들과 문화였다. 습관처럼 서점을 찾고 주말 저녁이면 다양한 공연장을 찾는 이 도시의 문화야말로 남미 최대의 문화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탄생시킨 저력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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