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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베르니, 모네의 집, 수련 정원

by 권혜경

노랑과 파랑, 모네의 식당과 부엌!


오래전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의 집을 소개한 글을 처음 봤을 때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노란색과 푸른색으로 이루어진 식당과 부엌이었다. 이제껏 봐 왔던 어떤 주방과도 다른 신선한 색채였다. 인상주의(Impressionism) 화가의 집다왔다. 이후 프랑스 지베르니(Giverny)에 위치한 모네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나의 버킷 리스트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드디어 몇 년 전 그 소망을 이룰 기회가 찾아왔다. 파리에 머무르면서 하루 정도 틈을 내 인근 지베르니를 방문한 것이다. 모네는 1883년 지베르니에 정착해서 1926년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모네는 인상파를 이끈 선두주자이다. 그는 1874년 동료 화가들과 함께 제1회 인상파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전시된 작품들이 당대의 전통적인 화풍과는 거리가 먼 그림들이어서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가 가장 심한 비난을 받았는데, 오히려 이들 새로운 화풍의 화가들은 ‘인상주의’라는 표현을 자신들의 그림을 대변하는 용어로 차용하였다.


프랑스에서 인상주의 붐을 일으키기 전 모네는 1871년경 영국에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그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터너의 그림은 전통적인 고전주의 화풍에서 시작하였으나 점차 윤곽이 흐려지고 빛과 색채로 뒤덮이는 화풍으로 발전하였다.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20160506_129%2Fskulllife11_1462512935351N8g9L_JPEG%2F%25B3%25EB%25BF%25B9%25BC%25B1.png&type=sc960_832 <노예선, 윌리엄 터너, 1840, 캔버스에 유채, 보스턴 미술관>


당시 터너의 후기 작품들을 접한 모네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프랑스로 돌아와 새로운 그림을 시도하였다. 빛을 받아들여 자유롭게 화폭에 담은 터너의 그림이 영국이 아닌 바다 건너 프랑스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전통적인 방식의 회화 기법을 거부한 채 야외로 나가 햇빛 아래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색감과 빛의 변화를 부지런히 자신들의 화폭에 담았다. 특히 모네의 경우 동일한 대상이 빛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파악하기 위해 연작 시리즈를 많이 그렸다. 건초 더미와 루앙 대성당, 그리고 수련이 대표적인 대상이다.


1883년 모네는 파리 인근에 있는 지베르니에 정착하게 된다. 넓은 대지에 온갖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물길을 살려 연못이 있는 정원도 만들었다. 특히 당시 유행하던 일본 판화 그림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일본식 다리와 수련이 가득한 일본식 정원을 가꾸었다. 정원사들과 함께 정원을 직접 가꿀 정도로 모네는 정원 일에 진심이었고, 지베르니에서 무려 250여 점에 이르는 <수련> 연작을 완성하였다.


7월 초에 방문한 지베르니 모네의 집은 한창 다채로운 빛깔의 꽃과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분홍과 초록이 어우러진 2층 건물이 분홍과 빨강 꽃밭 뒤로 서 있었다. 관광객들에게 떠밀려 내부 공간을 하나씩 구경하며 지나갔다. 거실엔 모네의 그림과 사진들이 걸려 있었고 우키요에 판화들도 눈에 띄었다.


KakaoTalk_20251126_163506298.jpg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 정면


드디어 기대하던 식당이 나타났다.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벽과 그릇장, 식탁과 의자, 그리고 전등까지 모두 연한 노랑이었다. 바닥은 노란색과 적갈색이 체크무늬처럼 섞여 있었다. 넓은 창을 통해 들어온 화사한 햇살 속에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던 모네 가족의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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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1126_163506298_02.jpg 연노랑 빛깔로 가득한 모네의 집 식당


식당 바로 옆은 흰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타일로 꾸며진 부엌이었다. 불을 지피던 벽난로 옆으로 오래된 철제 오븐이 구비되어 있었고 크고 작은 놋쇠 주전자들이 무심히 놓여 있었다. 따뜻하고 화사한 느낌의 노란색 식당과는 달리 흰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부엌은 청결하면서도 환한 느낌을 주었다.


KakaoTalk_20251126_163506298_01.jpg 흰색과 푸른색 타일이 어우러진 부엌


집 밖으로 나가서 넓은 정원을 이리저리 다녀보았다. 여름철이라 갖가지 색깔의 꽃들이 한창이었고,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 잡은 넓은 공간은 뜨거운 햇살 아래 절정을 맞고 있었다. 작은 물길이 이어지는 수로 옆으로도 나릿과 식물들을 심어 놓았고, 울창한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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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1126_163506298_11.jpg 다채로운 색감의 꽃들이 자리 잡고 있는 정원
KakaoTalk_20251126_163506298_12.jpg 정원 사이사이로 작은 물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원의 압권은 단연 일본식 정원이었다. 짙은 초록의 일본식 다리가 놓여 있었고 분홍빛 수련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 그리고 아침마다 활짝 수련이 피어나는 이 넓은 연못은 모네에겐 ‘천국’과도 같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KakaoTalk_20251126_163506298_13.jpg 초록색 일본식 다리가 놓여있는 수련 정원


말년에 들어 백내장이 찾아오면서 화가로서의 모네의 삶은 점점 더 위축되어만 갔다. 하지만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모네는 붓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말년에 그린 모네의 작품들에선 마치 추상화처럼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대상들이 화폭을 가득 채우기도 하였다.


지베르니를 떠나기 전 기념품숍에서 모네의 <아르장퇴유의 양비귀꽃> 그림이 담긴 유리 접시를 하나 구입하였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였던 부인과 어린 자식의 모습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접시였다.


KakaoTalk_20251206_205723160.jpg <아르장퇴유의 양귀비꽃> 그림 접시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8년 11월 12일 모네는 전쟁의 상흔을 겪은 프랑스 국민들을 위해 자신의 수련 그림 2점을 국가에 기증하였다. 이후 모네는 프랑스 정부와 더불어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한 쌍의 타원형 전시실을 만들어 자연 채광 아래 그의 수련 그림 총 8점을 전시할 계획을 세워 진행하였다. 하지만 그는 1927년 개관 예정이던 자신의 '수련' 연작 미술관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1926년에 사망하였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네의 수련 연작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지베르니의 수련 정원 한 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잔잔히 일렁이는 물 위에 점점이 떠있는 수련들! 어느새 한없이 고요해지고 차분해졌다.


KakaoTalk_20251203_180056217.jpg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네의 <수련> 연작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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