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식민통치 시절의 수도 '바타비아'
자카르타 (2025. 7. 3. 목)
자카르타 두 번째 날. 오늘은 북쪽으로 올라가 유명한 파타힐라 광장(Fatahilla Square)과 카페 바타비아(Cafe Batavia)를 방문하기로 했다.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파타힐라 광장으로 향했다. 인도네시아는 17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네덜란드는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후 고무, 오일, 향신료 등 천연자원을 착취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쌓았다. 특히 후추뿐만 아니라 정향, 육두구 같은 향신료 사업을 독점함으로써 많은 이윤을 올렸다고 한다.
파타힐라 광장에 도착하자 유럽풍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이 지역이 바로 네덜란드 식민 통치 시절 네덜란드령 동인도 시절의 수도 ‘바타비아’로 불리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오전 시간이었는데 무슨 화장품 관련 홍보 행사를 준비하는지 빨간색 휘장과 천막들이 광장 이곳저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젊은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잠깐 인터뷰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더니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대며 인도네시아에 온 감상과 느낌이 어떤지 물었다. 바로 전날 도착한 상태라 그렇게 많이 자카르타를 돌아보진 못했지만 이런저런 내 생각을 간단히 대답했더니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광장 한쪽에 있는 카페 바타비아에 들어갔다. 예약을 하진 않았지만 오래된 곳이라 내부가 궁금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어두운 빛깔의 마호가니로 단장된 카페 내부가 드러났다. 꽤 넓었으며 특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크고 작은 액자들이 빽빽이 붙어 있었다. 주로 오래된 할리우드의 남녀 배우들 사진들이었다. 테이블마다 흰색 테이블보가 덮여 있었고 다시 올리브 그린빛 바틱 천들이 깔려있었다. 운 좋게 창가석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오래된 유리 창문으로 아래쪽 파타힐라 광장이 내려다 보였다. 이곳의 시그니쳐 메뉴인 ‘나시 고랭 로아’와 음료수를 주문했다. 새우와 대합, 연어, 그리고 삼발소스가 적절히 어울린 메뉴였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50-60년대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사진과 카뮈, 피카소 등 예술가들의 사진들도 있었다.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카페 바티비아
카페 바타비아의 내부는 수많은 사진 액자들로 가득 차 있다.
카페를 나와 이리저리 다니며 구경했다. 특이한 것은 가족 단위로 사람들이 시원한 그늘에 자리를 깔고 앉아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관광안내소에 있는 영어 가능한 직원에게 물었더니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맞아 가족 단위로 나와 놀고 있다고 했다. 자카르타가 속한 자바섬은 주로 이슬람 신자들이어서 일체의 음주행위는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노상에 즐비했으며, 장신구나 관광상품을 파는 노점상들도 많았다. 운하를 따라 죽 걸어가 보았다.
바타비아 운하 정경
바닷가로 이어지지 않을까 해서 계속 걸어갔더니 바다는 나오지 않고 화물차들이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도로가 계속 이어졌다. 잘못 왔다 싶어 다시 구글 지도를 검색했더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나왔다. 이곳이다 싶어서 계속 그 지도를 따라갔더니 아뿔싸! 그냥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모여사는 조그만 동네가 나왔다. 마치 6-70년대 우리들 동네처럼 문밖에 나와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고 꼬마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잘못 왔다 싶어서 ‘바타비아’ 리조트 위치를 물었더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겨우겨우 ‘바타비아 리조트’를 찾았는데 그냥 커다란 건물 하나만 서 있었다. 웬 외국인 둘이 걸어와 ‘저기서 음료수를 마실 수 있나?’고 질문을 했더니 친절하게 들어가라고 했다. 지친 발걸음으로 들어왔더니 별세계가 펼쳐졌다. 크고 작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계류장이 나타났고 근사한 레스토랑까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타비아 요트 클럽이었다. 아무튼 시원한 음료수를 시켜 휴식을 취했다. 직원에게 의뢰해 블루버드 택시를 불러 호텔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