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 2일 새벽,
일본 교토에 있는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의 금각 사리전이 불탔다.
당시 사리전에는 화재경보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경보기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방화 시점에 경보가 울리지 않았고, 결국 46평에 달하는 사리전 전체와 내부에 비치되어 있던 관음보살상, 아미타여래상 및 불경과 장식이 전소되었다(참고: 나무위키).
화재 진압 후 방화범을 찾던 경찰은 금각사 뒷산에서 약을 먹은 채 할복을 시도하던 수습 승려이자 당시 오타니 대학 학생이었던 하야시 쇼켄을 발견해 체포하였다. 이후 심문 과정에서 그는 금각사 사리전을 방화한 이유에 대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 " "사회에 복수하고 싶었다" 등 두서없는 고백을 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1958년 일본 소설가 미시카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70)의 1인칭 소설 『금각사』로 다시 태어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자주 금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총 10장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허약한 신체를 타고난 주인공 '미조구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그의 말 더듬 증세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말 더듬 증세는 나와 외부 세계 사이에 하나의 장애로 작용했다. 첫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첫 발음이 나의 내부와 외부 세계 사이를 가로막는 문의 자물쇠 같은 것이었으나 자물쇠는 순순히 열린 적이 없었다." (p. 10)
"이러한 상황에서 소년은,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두 종류의 상반된 권력의지를 품게 된다. 나는 역사 중에서 폭군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내가 말더듬이에다가 과묵한 폭군이라면 신하들은 내 안색을 살피며 항상 주눅이 들어 지내게 되리라... 평소에 나를 업신여기는 교사나 학우들을 모조리 처형시키는 공상과 더불어 내부 세계의 제왕이자 조용한 체념에 잠긴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공상도 즐겼다. (pp. 11-12)
소설 초반에 언급되는 주인공의 말 더듬 증세는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될 그 자신과 바깥 세계 간의 불화를 암시한다. 그에게 있어 한 가지 절대적인 존재는 '금각'이다. 아버지와 처음 보았을 때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던 금각이 점점 그의 내면 깊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후 금각사로 가 도제가 된다.
소설의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금각은 그에게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나아가 그것은 소설의 전반부에서 언급되는 우이코라는 아름다운 소녀와 이미지가 겹치기도 하고 또한 그가 우연히 친구 쓰루카와와 함께 목격하였던 젊은 연인의 모습 - 젖가슴을 풀어헤쳐 사랑하는 남자에게 젖을 짜 먹이던 - 과도 겹친다.
오타니 대학에 들어가서 알게 된 안짱다리 친구 가시와기와의 만남은 주인공 미조구치의 견고하던 세계관에 균열이 나게 한다. 아니 어쩌면 가시와기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내면 깊이 감춰져 있던 파괴 욕구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무렵부터 금각에 대한 나의 감정에 미묘한 변화가 생겨난 것 같다. 증오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내부에 서서히 싹트고 있는 것과 금각이 결코 서로 용납되지 않는 사태가 언젠가 오고야 말리라는 예감이었다." (p. 191)
"마치 저주하듯이 나는 금각을 향해, 난생처음으로 거칠게 외쳤다. "언젠가 반드시 너를 지배할 테다. 두 번 다시 방해하지 못하도록 언젠가는 반드시 너를 내 것으로 만들 테다." 목소리는 황량하게 심야의 경호지에 메아리쳤다." (p. 224)
금각사에서 함께 도제로 지내던 친구 쓰루카와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주인공은 가시와기와 논쟁을 한다. 그는 '이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인식'(p. 311)이라는 가시와기의 말을 반박하며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행위'(p. 312)라고 소리친다.
소설의 마지막 장, 드디어 주인공은 금각을 불태운다. 방화를 하기 전 불안과 갈등에 휩싸이던 그를 다시금 실행으로 나아가게 만든 건 《임제록(臨濟錄)》<시중(示衆)>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안으로 향해 밖으로 향해 마주치면 즉각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상을 만나면 조상을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족을 만나면 친족을 죽여서 비로소 해탈을 얻노라." (p. 370)
마침내 금각에 불을 지른 그는 절을 빠져나와 달리고 또 달려 뒷산 정상에 오른다. 저 멀리 솟구쳐 오르는 금각의 불길만 보일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는 호주머니를 뒤져 단도와 수건에 싸인 약병을 던져버린다.
"다른 호주머니의 담배가 손에 닿았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p. 376)
『금각사』를 쓴 미시마 유키오는 어쩌면 작중 주인공 '미조구치'와 맥락이 닿아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일본 고위 관료 출신인 집안에서 자란 그는 귀족 출신만 진학할 수 있는 가쿠슈인(學習院) 중고교를 졸업한 후 아버지의 권유대로 도쿄 대학 법학부에 진학하였다. 십 대 중반부터 글을 발표해 문학 천재라고 칭해졌던 그는 21세가 되던 1946년 『설국』(雪國)의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의 추천으로 단편 '연초'를 발표함으로써 일본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하게 된다. 이후 가와바타 야스나리와의 관계는 평생 사제지간 격의 관계를 이어나갔다. (위키피디아 참조)
1949년 대학을 졸업한 후 1년 정도 취업을 하나 결국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쓴 첫 장편은 『가면의 고백』(假面の告白, 1949)이다.
몰락해 가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주인공이 성장과정에서 느끼는 가족관계의 문제, 동성애적 감정 등을 감각적이고 세련된 문장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그는 이 첫 장편으로 당시 새로운 유형의 일본 문학을 탄생시켰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이후 『사랑의 갈증』(1950), 『금지된 색』(1954), 『파도 소리』(1954) 등 후속 작품들을 발표함으로써 일본 문단의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은 33세 때 발표한 『금각사』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그는 『우국』(憂國), 『풍요의 바다』4부작 등 소설과 여러 편의 희곡을 집필하였다.
특히 『우국』은 1936년 일본에서 일어난 소위 '2·26 사건, ' 즉 2월 26일부터 29일까지 일어난 천황파 일본장교들의 쿠데타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쿠데타가 진압된 후 반역자로 몰린 장교들이 천황의 명령으로 총살된 것에 통탄해, 주인공인 일본인 중위가 할복자살을 하고 그의 부인 역시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 『우국』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서 제작, 감독뿐만 아니라 주인공 역을 맡기도 했다.
또한 그는 유럽과 미국 등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국제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영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해외 독자층을 확보하였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두 번이나 지명되었으나, 결국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갖고 있던 미시마 유키오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더 정치색이 뚜렷해졌다.
1966년 그는 극우적인 성향의 민병대 '방패회'(楯の會)을 결성하고 무장투쟁 훈련도 하였다.
그는 천황제의 중요성과 존속을 주장하였으며,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의 영향으로부터 일본을 지키기 위해 무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1970년 그는 마지막 작품 『풍요의 바다』를 완성한 후, 11월 25일 '방패회' 대원 4명과 함께 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지에 들어갔다. 그들은 '우수 자위대원 표창'을 명목으로 자위대 총감과 면담하던 중 일본도로 위협해 그를 인질로 잡았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후 총감의 방 발코니에서 연병장에 모인 천여 명의 자위대원들과 취재진을 향해 미일 안보조약 개정, 평화헌법 개정, 자위대의 쿠데타 등을 요구하는 연설을 하였다. 당시 이 상황은 TV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잘 들어라. 지금 일본의 혼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자위대 제군뿐이다. 일본을 지킨다는 것은 천황을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제군은 사무라이(무사·武士)다. 너희 자신을 부정하는 헌법을 왜 지키고 있단 말인가. 일본의 근본이 왜곡돼 있다. 나는 자위대가 일어나는 날을 기다렸다. 제군 가운데 나를 따를 사람은 없는가?" (출처: 연합뉴스, 2020. 11.23)
하지만 당시 그의 연설을 들었던 자위대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고 한다. 자위대원들의 반응에 실망한 그는 연설을 마친 지 5분 후에 "이제 자위대에 품은 내 꿈은 사라졌다"며 "천황 폐하 만세!"를 세 번 외친 뒤 할복자살을 시도하였다. 함께 따라온 대원 중 다른 한 사람도 그를 따라 할복 자살하였다.
당시 TV 생중계로 이를 지켜보던 일본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일부에서 그를 영웅시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죽음은 20세기 중반의 일본 사회를 큰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히로히토 천황은 외신들의 반응을 의식하면서도 미시마 유키오가 평소 자신을 찬양하였다는 사실을 알고서 장례비용을 보냈다고 한다. (출처: 연합뉴스, 2020. 11.23)
『금각사』에서 금각을 끝내 불태우는 미조구치처럼, 미시마 유키오 역시 자신이 신봉하는 사상의 실행을 위해 끝내 할복이라는 수단을 선택하였다. 자신의 생각과 이상을 극한으로 밀어붙인다는 점에 있어서 미조구치와 미시마 유키오의 행위는 결을 같이 한다.
그가 1950년에 발생하였던 금각사 방화 사건을 자신의 소설 모티브로 선택한 것이나 보수적이고 극우적인 그의 정치 성향을 한 치의 의심 없이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쿠데타를 선동하다 스스로 죽음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닮아있다.
그의 글은 대단히 유려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 글에 담겨있는 그의 생각들은 스스로의 태생적 한계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