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반둥 아시아-아프리카 비동맹 국제회의 박물관
반둥 (2025. 7. 5. 토)
오늘은 오전에 반둥 시내에 1955년 아시아-아프리카 비동맹 국제회의가 열렸던 장소를 찾기로 했다. 그랩 택시를 탔는데 내리는 장소를 잘못 설정해서인지 다시 회의장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가면서 은행들이 있어 현금 인출을 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인출이 되지 않았다. 여러 곳을 시도한 끝에 TNI 은행에서 현금 인출을 할 수 있었다. 트래블리 카드가 모든 은행 인출기에서 작동하는 게 아니었다.
마침내 국제회의장 건물을 찾았다. 반둥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비동맹회의 국제회의장은 외관이 하얀색으로 되어 있고 국기 게양대가 여러 개 서 있었다. 시간대별로 입장이 제한되어 있어 출입 양식을 휴폰으로 다운로드하여 필요 정보를 입력한 후 입장할 수 있었다.
반둥 아시아-아프리카 비동맹 국제회의 박물관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1955년 4월 18일부터 24일까지 반둥에서 개최된 제3세계 대표들의 회의였다. 버마, 인도, 파키스탄, 중국, 이집트 등 총 29개국 대표가 참석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 민족의 단결,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로부터의 자유, 민족 독립 및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한 투쟁 정신 등에 합의하였다. 전시장 내부에는 국제회의와 관련된 수많은 사진과 자료, 영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의장을 맡았던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의 모습부터 당시 참여했던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 중국 저우포하이(주은럐), 시아누크 캄보디아 왕자, 인도 네루 수상 등의 사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둥 10원칙’(The Ten Principles of Bandung)이라고 알려진 회의의 최종 의정서에는 긴급한 경제 발전의 필요성, 아시아-아프리카 국가 간 그리고 그 경계를 넘어서는 문화 정치적 협력 및 자유 달성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 회의는 이후 제3세계 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는 이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기록물들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당시 기록 영상을 볼 수 있어서 생생한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장소는 실제 회의가 열렸던 회의장이었는데, 각국의 국기들이 세워져 있었다. 많은 방문객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반둥 아시아-아프리카 국제회의장
회의장에서 나와 반둥 모스크로 향했다. 모스크 앞에는 인조잔디가 깔린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수많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인접한 반둥 모스크 역시 사람들로 빽빽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슬람 국가여서 그런지 술을 마시는 모습은 일체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가족들이랑 모여서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편안한 모습들이었다.
반둥 모스크 앞 잔디밭
‘자바라노’라는 커피점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주 넓은 매장인데 다들 가족이나 지인들 단위로 몰려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휴식을 취한 후 아까 봐두었던 관광버스 승강장을 찾아갔다. 운행 시간이 끝났다고 했는데 갑자기 버스 한 대가 다시 운행을 한다고 해서 잽싸게 올라탔다. 약 30여분 간 반둥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앞쪽에 서 있는 한 여성이 인도네시아 말로 안내를 해서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열린 차창으로는 각종 매연이 쏟아져 들어와 손수건을 꺼내 입과 코를 막았다. 아무튼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반둥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본 뒤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기 위해 백화점이나 아케이드 같은 곳을 찾아가는데 한쪽에 금은방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금목걸이나 반지, 팔찌를 파는 진열대 뒤로 굵은 쇠창살이 세워져 있고 그 뒤쪽에 판매를 하는 여성들이 서 있었다. 진열장 앞에는 젊은 인도네시아 남녀들이 들러붙어 물건을 고르고 또 흥정하는 모습이었다.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금반지와 금목걸이 등을 파는 가게. 견고한 철창을 사이에 두고 금 거래가 오간다.
백화점에 들어가 구경을 하던 중 신나는 음악 소리에 끌려 지하로 내려갔다. 십 대 청소년들이 수십 명 모여 K 팝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앞에 있는 무대에서 진행자가 음악을 틀면 그 춤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와 춤을 췄다. 인도네시아 반둥 시내 한복판에서 K팝 음악과 댄스 광경을 눈으로 목격하니 정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반둥 백화점 지하층에서 벌어지는 흥겨운 K팝 댄스 모임
다시 브라가 거리로 돌아가 피자와 파스타로 저녁을 먹은 후 그랩 택시를 타기 위해 길 아래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브라가 거리가 너무 혼잡해서 택시를 불러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서였다. 어두운 인도를 서둘러 내려가다 순간 어딘가에 부딪쳐 거꾸로 넘어졌다. 아픈 것도 잠시 창피함에 벌떡 일어났더니 주변을 지나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달려와 괜찮냐고 물었다. 떨어진 안경도 주워주고 걱정스럽게 부축도 해줬다. 정작 남편은 저만치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큰 소리로 불러 다시 돌아오게 했다. 온몸을 추스르는데 지나가던 한 청년이 휴지 한 움큼을 가져다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길을 가다 실수로 넘어진 외국 관광객에게 그들은 따뜻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던 것이다.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대충 몸을 추스른 후 그랩 택시를 잡아 호텔로 돌아왔다. 오른쪽 무릎은 조금 상처가 나 있었고 왼쪽 무릎 역시 멍이 들어 있었다. 이만하기 다행이다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