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인문학

미셸파스투로

by 맨북

색의 인문학

16p -우리 조상들은 색에 대해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뀐 것은 우리의 감각 기관이 아니라 색에 관한 인식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색에 관한 지식이나 어휘, 상상력이나 감수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이지요-색, 색상, 색깔에 관한 주제에 대해서 나는 지금껏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관심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미술이었고 미술 시간만 되면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수십번도 했으니, 색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최근에 디자인과 사진 보정과 관련된 공부를 하다 보니 사람들은 어떤 색상을 바라보고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는지 궁금해졌고 도서관을 돌아다니던 중 이 책을 발견했다. 물론 이 책은 내가 생각한 질문에 완벽한 답을 선사해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은 색에 관한 이야기가 이렇게 넘쳐나고 그 이야기들이 엄청나게 재미있고 얼마나 흥미로운지 알려준 책이었다. 사람들의 인식과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많은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변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고 나는 색에 대한 아름다움의 기준이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살면서 처음으로 해보았다. 즉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이라는 저자의 이야기에 동의하게 된 셈이다.


빨간색- 이중적 의미를 가진 고대의 색

빨간색은 매우 오랜 시간 속에서 인류와 함께 해온 색이다. 다양한 기후에 분포하는 꼭두서니라는 식물은 다른 식물보다 손쉽게 빨간 염료를 채취할 수 있었고 덕분에 인류는 빨간색을 다양한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빨간색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는데 첫 번째 생명의 의미를 두 번째는 죽음을 뜻한다. 첫 번째를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의 예시로는 성령 강림 대축일(오순절)이 빨간색으로 표현된 점과 예수님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은 예수님이 부활한 이후 50일 되는 날 성령이 내려오자, 예수의 제자들이 이를 전도 활동을 시작한 날로 기록되어 있다. 그림에서는 성령을 빨간색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생명의 탄생 또는 생명의 재생을 붉은 빨간색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도 빨간색으로 표현됐는데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영웅적 선택을 상징한다. 즉 사람들은 빨간색을, 생명을 만들고 보호하는 의미로 표현하고 생각했다는 점이고 이를 미술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인간의 창의성을 엿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빨간색이 이렇게 좋은 의미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생명의 탄생 치유의 의미가 있는 것과 다르게 그에 못지않게 부정적인 의미도 많이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죽음을 표현한 대표적인 예시는 지옥, 악마, 범죄, 피 등이다. 이러한 의미를 상징하는 미술작품은 매우 많지만, 책에서 사례를 들자면 예수와 유다의 입맞춤이나 요한 계시록 등이 대표적이다. 유다는 예수를 배신한 유일한 제자이다. 따라서 이 둘의 입맞춤을 표현할때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은 유다를 악마로 생각했기에 빨간색으로 표현했다. 또한 요한 계시록에 등장하는 악의 상징인 대탕녀 바빌론을 표현할 때도 드레스를 매우 붉은 빨간색으로 표현하며 대탕녀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빨간 색상이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빨간색의 이중적인 의미를 바라보면서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색상의 의미가 나타나기 이전에 색상을 추출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선제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빨간색이 아무리 상징적이고 의미 있다고 사람들이 인식할지라도 그러한 색상을 채취하거나 활용하는 과정이 어려우면 역사적으로 남기는 힘들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빨간색이 고대의 색이면서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것은 그 색상이 그만큼 얻기 쉬었기 떄문이다. 인간의 이중적인 본성을 담을 수 있는 색은 빨간색이 유일하며 빨간색은 인류의 이중적인 자아가 담겨 있는 고대의 색이다. 이는 지금도 과거에도 그러했다.


파란색 -현대의 색

앞서 살펴본 빨간색과 다르게 파란색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와 의미를 남기지 못한 색상이었다. 즉 한마디로 인류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색상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오늘날 파란색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상이며 현대 시대에 많은 의미를 남긴 색상이다. 빨간색이 고대의 색상이라면 파란색은 현대의 색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동물의 벽화가 그려진 구석기 시대 최초의 염색 기술이 발달한 신석기 시대에서는 빨간색, 흰색, 검은색만이 기본적인 색상으로 인정받았고 파란색은 색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파란색을 표현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부 이집트인들이 행운의 색으로 파란색을 사용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파란색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로마 그리고 게르만 같은 나라들에서는 파란색을 미개인과 이방인의 색으로 취급했고 파란 눈을 가진 인종들에 대해서도 차별과 박해의 태도를 이어 나갔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파란색은 빨간색과 다르게 쉽게 만들기도 어렵고 만드는 과정도 매우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12~13세기부터 완전히 바뀌게 된다. 바로 색과 빛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발생하면서부터 파란색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색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프랑스의 수도원장이었던 쉬제르는 색과 빛을 동일시하며 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반대하는 성 베르나르는 색은 빛이 아니고 그저 물질에 불과하니 본질적으로 천하고 하느님과 신도들의 교류를 방해하니 교회에서 퇴출당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을 이루었다. 하지만 색은 빛이라는 쉬제르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면서 파란색은 빛을 상징하는 색으로 표현되며 많은 곳에서 사용되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성모마리아의 그림이 파란색으로 그려지면서 색은 빛이라는 주장에 더욱더 힘이 실렸고 교회에서는 이때부터 파란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에 그전까지 비싸게 제작된 파란색은 프러시안블루 제조법이 만들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값싼 가격으로 보급되었고 중세 시대에서는 파란색을 빼놓을 수 없는 색으로 평가받았다. 그 이후에 파란색은 평화와 안전을 상징하는 차분한 색상으로 자리매김했다. 국제연합, 유네스코, 유럽의회, 유럽연합 같은 국제기구들의 깃발이나 문양 모두 파란색을 사용하며 세계의 평화 안전을 도모하겠다는 의미를 쓰이기 시작했다. 즉 고대로부터 시작된 파란색에 관한 부정적인 생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측면을 보여준다. 이제는 주변에서 파란색이 야만적인 라던지 미개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대 사회에서 파란색은 안정적이고 시원하고 차분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색이라고 이야기하며 긍정적인 색 중 하나로 손꼽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가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살펴보면 파란색은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했으나 앞으로 가장 오랫동안 사랑 받을 색으로 남을 것 같다.



하얀색- 상징적 의미가 변하지 않는 색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얀색은 색이 아니지 않아? 하얀색이랑 무색이랑 무엇이 달라?

이런 고민은 우리들만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보다 앞선 시대에 살았던 선조들도 똑같이 고민했던 문제이다. 선조들은 우리들의 고민에 어떻게 답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얀색은 하나의 색으로 인정받았으며 무색과 하얀색은 다른 색이라고 생각했다. 벽화에 그림을 그릴 때도 동물을 표현하기 위해서 하얀색을 표현했으며 무색은 아무런 안료나 염료가 섞이지 않은 모든 것으로 정의했다. 이후 고대 시대에서 중세 시대로 넘어가면서 하얀색은 순수 청결과 같은 의미로 평가받았다. 이러한 이유는 하얀색은 다른 색들보다 상대적으로 균일하고 통일되어 있기에 다른 색과 잘 섞이지 않아서 본래의 색상을 잘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눈이 한번 내리면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버린 것처럼 하얀색은 다른 색상에 오염되지 않은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순수함 청결과 같은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고도 사람들이 생각했다. 그래서 갓난아이 또는 인생의 탄생도 하얀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얀 수건에 아이를 둘러싼 그림이나 하얀 욕조에 아이를 씻기는 모습과 같이 인생의 첫 출발점의 모습이 밝고 깨끗한 상태로 출발했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서 하얀 색상을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하얀색은 죽음 그리고 노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삶이 끝자락에 다다르면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고 병원에서 하얀 환자복을 입고 하얀 무덤에 묻히니 하얀색은 노인과 그들의 죽음을 상징한다. 이러한 현상에 저자는 우리의 인생은 하양에서 하양으로 인생의 여정이 이루어졌다고 표현했다.우리의 탄생이 하얀색으로 이루어졌으며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의 색상을 접하고 그 색상의 영향을 받지만 결국 우리는 다시 하얀색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씁쓸하기도 하고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하얀색에 관한 우리의 생각과 의미는 고대 시대부터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흰색이 상징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란색 이방인을 상징하는 오명의 색

-색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노랑은 이방인이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놀랐던 부분은 노란색이 역사적으로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색이 노란색인데 역사적으로 노란색이 이런 취급을 당했다는 게 파란색이 박해받은 사실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물론 항상 역사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노란색은 종교의식이나 결혼식 등에서 사용되었고 중국에서는 황제의 옷이 노란색으로 사용되었으니, 모든 나라와 시대에서 항상 박해받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중세 시대부터 롤랑의 노래 가늘롱 유다의 옷 색깔 노란색은 항상 배신자의 색상으로 평가받으면서 박해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는 금색의 인기 악마와 연관된 유한, 유대인을 향한 배척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런것들이 노란색의 박해에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하지만 왜 이런 박해가 있었는지 결정적으로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박해의 정도와 수준이 다른 색상보다 심하게 다루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유다의 배신성을 표현하는데 한정되었던 노란색은 이후에는 유대인 사회 전체로 확장되었다. 13세기 가톨릭교회에서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결혼을 금지했으며 이들을 식별하기 위한 노란 별을 만들기 시작했고 19세기에 이르러 독일 나치가 다윗의 별을 가슴에 붙이며 노란색을 차별적인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유대인에 관한 박해는 십자군 원정이 실패한 이후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패배한 이후 누군가에게 탓을 돌려 패배의 원인을 회피하고자 하는 기독교인들과 히틀러와 나치 세력이 일으킨 행위였다. 하지만 야수파나 추상파 화가들이 노란색을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Tour de라는 자전거 대회를 주최하는 레퀴프라는 잡지에서 구간별로 선두를 달리는 선수들에게 노란 셔츠(Maillo jaune)를 제공하는 장면을 신문표지에 실으면서 노란색에 관한 잘못된 이미지가 조금씩 희석되기 시작했다. 예술과 스포츠 분야 덕택에 노란색은 본격적으로 명예가 회복되었고 엠블럼이나 셔츠 등에 새겨지면서 상업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노란색이 배신자 그리고 부정적인 역할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생각할지라도 나에게 있어서 노란색은 매우 소중한 색이다. 따뜻함 따스한 감정을 노란색을 볼 때마다 느껴지고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인 색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고흐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이방인의 색 미치광이 색으로 평가할지라도 나에게는 노란색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색이다.


소감 및 평가

나에게 있어 이 책은 탐험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탐험이란 기존에 내가 살던 세계와 탐험하는 세계는 얼마나 다른지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이로 인해서 내 생각은 얼마만큼 변했는지 다음에는 어떤 장소를 어떻게 살펴볼지 고민해 보는 기회를 주는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아, 이게 이래서 이런 것이구나 살면서 이런 내용은 처음 들어보네.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았다니 정말 바보같군 이러면서 수십번 책을 되살펴 보며 놀란 표정과 감탄하는 반응을 반복했다. 이 책을 계기로 미술과 색에 관한 관심이 더더욱 많아졌으며 내가 기존의 색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이 정말 많이 변했다. 나는 빨간색은 불 파란색은 그저 물 이러한 속성이 옛날부터 지속되어 왔고 그런 의미 말고는 다른 의미는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생각이 정말 산산조각 나버렸다. 다음에는 또 어떤 탐험을 할지 기대가 되면서 색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통한 탐험이 잘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에 관심 없지만 역사와 철학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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