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내가 거짓말쟁이라던가 남을 속이기 위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솔직하지 못한 이유는 머릿속에서 너무 많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 말에 타인이 상처받지는 않을까? 솔직하게 말했다가 큰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이런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어린 시절부터 마음 한편에 가득했고 지금도 내 마음속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만의 가시나무들이 존재하며 그 가시 때문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에 그 모난 가시를 드러내기보단 조금씩 모난 가시를 다듬어내며 세상을 살아간다.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인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라는 곡에는 이러한 내용의 가사가 있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갚네.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이 곡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고통과 불안한 모습을 애써 감추기 위해서 아등바등 삶을 살아가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러한 삶의 모습이 들통나 혼자 남겨질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경제적 빈곤함을, 누군가는 정서적인 불안감을 타인에게 공개될까 봐 두려워하며 하루하루 숨을 죽인 채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학문적으로 정의해본다면 가시나무는 사적인 자아((private self)로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숨겨진 내면의 모습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시나무를 다듬는 일은 인상관리(impression management) 즉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상관리는 FFT(대면 상호작용)에서 매우 활발히 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추정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상관리는 SNS(비대면 상호작용)에서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왜냐하면 SNS는 비언어적 단서가 풍부하지 않아 얼마든지 인상관리를 목적으로 단서를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고 즉각적인 메시지의 전달과 수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비동기적 채널이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캣피쉬는 이러한 SNS를 통한 인상관리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SNS의 정보가 수많은 거짓과 기만을 바탕하고 있다는 점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며 인상관리의 위험성을 깨닫게 해준다. 영화의 이야기는 네브와 에비가 SNS상에서 서로 그림과 사진을 공유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 둘은 SNS상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친밀한 관계를 구성했고 이러한 친밀감은 예비의 주변 인물과의 관계로 이어지게 된다. 어머니 안젤라, 누나 메간과 오빠 알렉스 그 중 메간이라는 인물과 네브는 SNS를 통해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메간이 스스로 제작했다고 보낸 음악이 다른 뮤지션의 곡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임이 밝혀지고 네브와 일행들은 지금까지 SNS에서 드러난 모든 정보와 이야기들을 검증했고 이후 직접 찾아가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결국 안젤라 씨는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을 털어놓는데 메간이라고 SNS에서 나타난 인물은 자신이 만든 가상의 인물이고, 자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밝혔다. 안젤라 씨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은 한때 무용수를 꿈꾸었는데 아이들을 위해서 꿈을 포기한 것을 후회하며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제가 보여드린 모습들은 저의 조각들이에요 한때 나였던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될 수 없는 조각들이에요- 나는 영화를 보면서 많은 것들이 공감되었지만 이 부분이 가장 공감이 되었다. 결국 나라는 것은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나의 여러 조각이 구성된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조각들은 내가 아니고 어떤 조각들은 나라는 것은 없고 모든 조각이 모두 나인 것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어렸을 때 나의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을 거부하고 그 모습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아닌 것 같았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데 불리한 특성 같은 것이라고 인식했었기 때문이다. 이랬던 내가 나의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을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나에 대한 고민과 생각의 시간을 줄이고 다양한 경험을 얻게 되면서부터였다. 영화를 본 소감을 한 줄로 남기는 일을 하거나, 하루에 만 보씩 걷는 일을 하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작성하는 일을 하면서 나는 나의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이 싫지, 않아졌으며 그런 것을 고민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이러한 성격을 바꾸고 싶다고 한들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이런 것을 고민할 시간에 책이나 영화 한 편 보는 게 더 행복한 삶을 사는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20세기의 최대의 지성인으로 손꼽히는 버트런드 러셀은 글 쓰기를 어려워하는 작가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글을 쓰려는 생각을 버리고 대신 글을 쓰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세상으로 나아가 해적이 되어보고 보르네오의 왕도 되어보고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라’ 러셀은 글을 쓰려는 생각이 오히려 글 쓰는 것을 방해하며 다양한 체험을 통해서 그 생각을 줄일 것을 주장했다. 나 역시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며 러셀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싶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관한 생각을 버리고 대신 나를 둘러쌓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라고 길거리에 떨어지는 쓰레기를 줍는 환경미화원, 매일 같은 시간에 버스를 운전하시는 버스 기사분들을 바라보면 이 드넓은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어리석은 존재인지 깨닫게 되고 이에 따라서 자신의 결점과 흠결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적절한 인상관리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는 자신의 집착을 줄이고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인상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 너무 마음속에 존재하는 가시나무에 집착하지 맙시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기에도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빠듯합니다. 우리는 그저 짧은 순간을 사는 존재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