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영화 자막없이 보기는 결국 나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애초에 시청 콘텐츠 자체에 취향을 많이 타는 편이고 흔히 말하는 인생 영화, 드라마 같은 작품을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스토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작품을 자막없이 2~3번 시청한다는 건 무리였다는 걸 이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공부라고 해도 내가 재밌어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거고 특히 의무감으로 볼 일이 없던 드라마나 영화는 더욱 그런 영역에 속하는 주제였다. 그래서 휴가를 다녀온 뒤부터 찜 해 놓은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시작하려고 시즌1 밖에 없는 시리즈로 시작했는데 다음 시즌이 왜 없지...? 하며 잠깐 슬펐을 정도로 나의 취향에 잘 맞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시즌이 5~6개씩 되는 다른 시리즈를 보다가 중간중간 계속 돌려볼 수 있는 작품을 잘 골랐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다 본 작품을 쉼 없이 바로 보는 건 맞지 않아서 다른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길이나 장르에 신경 쓰지 않고 나의 취향에 맞춰서 찜 해 놓은 작품이라서 그런가 또 4시까지 열심히 보다가 겨우 잠들었다. 그리고 재미와는 별개로 '아, 이 맛에 공부를 하는구나.'를 경험하기도 했다. 낮에 노트에 열심히 적은 청크 중에 하나가 주인공의 대사로 나왔는데 그 대사를 듣자마자 자막을 보기 전에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두 단어로 이루어진 정말 짧은 대사였지만 배우의 얼굴과 장면만 보고 있었는데도 대사를 바로 이해했다는 그 기분이 정말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고, 설레었다. 그 전에도 짧게 나오는 대사는 따라 말해보기도 하고 이 정도는 들리는구나, 하고 지나가기도 했지만 내 귀로 듣고 온전히 뜻을 알아들었다는 그 기쁨은 비교할 수 조차 없게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말하는 것들에서 내가 공부하던 것이 나온다는 즐거움을 학창시절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것 같다. 그리고 의무감이나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원하고, 잘 하고 싶기 때문에 하던 공부에서 이 경험을 해봤다는 게 정말 소중하다.
1초도 되지 않은 짧은 대사였지만 앞으로 점점 길어질 거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 이 행복을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이고 계속 느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열심히 꾸준히 해야지. 다음 주에는 어떤 행복을 느낄 수 있을 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