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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Mar 31. 2021

니가?(네가?)라고 말할 땐 주변을 둘러보세요

어렵다

세상은 원래 흉흉했는데

2020년 1년 동안 전 지구적인 역병으로 시달리다 보니 사람들은 미쳐가고 그들이 길거리로 나와

활보를 하게 되자 곳곳이 지옥이고 지뢰밭이 되었다.


다니던 중학교와 담벼락을 맞댄 어느 대학에서 시도 때도 없이 전경들이 최루탄을 뻥뻥 쏘아대고

쇼핑을 나갔던 명동에서 갑자기 흰 헬멧을 머리에 쓰고 청자켓을 입은 '백골단'이 곤봉을 들고

우르르 달려오는 것을 봤을 때도 내 요즘처럼 이리 두렵고 '쫄'지 않았었다.


나는 나 이기 때문에, 나라서, 너무 잘 보이고 너무 미국 사람처럼 보이지 않고 너무 아시안처럼 보인다.

이게 당연하지 않나. 나는 동양여자니까.

내가 노랑머리로 염색을 하고 얼굴에 흰 칠을 덕지덕지 한다고 해도 나는 미국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시안인 나는 눈에 너무 잘 띈다.




이것은 실화.

몇 년 전.

어릴 때 캐나다로 이민 가서 자라난 한국 30대 여인이 맨해튼 거래처에 출장을 왔다가

맨해튼. 35-42 스트릿. 5번가 어디쯤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국말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는 그녀는

한국말은 서울말에 가깝게 하고 영어는 캐나다 악센트가 약간 섞인 발음이었다.

그녀는 뉴욕에 사는 한인 친구와 신나게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어떤 남자가 그녀에게 조금 굳은 표정으로 다가와 그녀의 앞에 섰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봐요 젊은 처자. 입 조심 좀 하시지"

"엥? 익스큐즈미?"

"너는 지금 너무 위험한 단어를 너무 크게 많이 말하고 있잖아. 나는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엥? 당최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나는 몇 번이나 N Word를 들었어."





맨해튼에서 급히 돌아와 몇 시간 전 있었던 일을 생생하게 전하는 그녀의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렇다. 우리가 신나게 말하는


니가? 정말? 진짜로 니가 그랬단 말이야? 웃기지 마. 니가? 니가 그랬다고?

벌써 이 문장에만 4번의 니가가 나온다. 그러니 옆에서 듣던 그 남자는 오해할 수도 있었겠다.


그녀는 급히 그 남자에게 유창한 영어로 상황 설명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들려서 너에게 불쾌감을 주었다면 미안하긴 하지만 그 단어는 그런 뜻이 아니고

Do you?

Are you?

Were you?

Did you?

등등 아주 많은 방법으로 사용되는 한국어였다고. 구글링에 위키디피아까지 아이폰을 동원해서 이해시키려 설명을 많이 했다고 그랬다. 종당엔 그 남자도 이해하고 웃으며 갈 길 갔다고.





상식적인 사회였다면 한국말 니가를 100번 말한들 1000번을 말한들 내가 쫄을 필요도 없다.

그들이 설사 그 단어를 오해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사람을 죽일 만큼 때려서는 안되는 일이다.

반대로 나에게 칭챙총이라고 말하고 바나나라고 말하고 옐로우라고 말하고 손가락으로 눈을 위로 찢어 올리는 짓을 내 코 앞에서 했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죽일 만큼 때리지 않잖나.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당분간 여기서 살아야 하고

저 에피소드를 들은 그날부터 나는 정말 조심하면서 주변을 살피고 내 입을 살핀다.

앞으로는 원래 하면서 지내던 조심에 100을 곱해서 조심하며 살아야만 할 듯싶다.


사는게 고단하다. 



Photo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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