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작 좀 하자
지금 사는 곳에서 4년을 살았다.
반지하, 1층, 2층으로 된 빌딩 안에는 총 12채의 아파트가 있고 우리는 그중 꼭대기층에 살고 있다.
이 집에서 지낸 처음 1,2년은 깜깜할 때 나가서 깜깜할 때 들어와 겨우 씻고 잠을 자는 곳으로만 살았다.
3년째 되던 해에는 다리를 다쳐서 이 집에 꽁꽁 갇혀 지냈고
4년째였던 지난해에는 코로나 때문에 꽁꽁꽁 갇혀서 지냈다.
문제의 악취가 시작된 것은 두어 달 전부터였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부쩍 아파트 단지 안에 이사가 많아졌다.
쿼런틴이 길어지자 답답함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더 안전하고 탁 트인 공간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겠지만
월세를 내지 못해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리라는 것은 작년 한 해를 힘들게 보낸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익숙한 얼굴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같은 빌딩 안에서 누가 이사를 나갔고 누가 들어왔는지 나는 세세히 알지는 못한다.
신을 신고 밖을 나가려다가도 옆집이나 다른 층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나면 잠시 기다렸다가
아무 소리가 나지 않을 때, 아무도 마주치지 않을 것이 100퍼센트 확실할 때만 내 집 문을 열기 때문이다.
문제의 악취는 음식 냄새다.
미안하다.
누군가는 분명 먹으려고 요리하던 중 새어 나온 냄새일 텐데 나에게는 악취로 느껴진다는 것이.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만 악취는 악취다. 뭐라 대체할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땅에 묻은 것도 잊은 7년 된 김장 항아리 밑바닥에서 7년간 발굴되지 못한 김치에
멸치, 까나리, 황석어, 갈치, 명태, 오징어, 갑오징어 등등으로 만든 액젓을 콸콸 들이부은 후
어느 종갓집에서 대대로 내려온다는 80년 된 씨간장
돌덩이인가 소금 덩어리인가 그냥 황토를 굳힌 건가 모를 바싹 굳은 된장 한 덩어리를 넣고
품질이 좋지 않은 콩으로 만든 청국장도 몇 덩어리 넣고
깊고 깊은 동굴 안의 마녀가 기다란 나무 주걱으로 스르렁~ 흐르렁~ 하면서
3박 4일을 푹푹 끓이다가 악어의 눈물 세 방울을 떨어뜨려서 마무리한 찌개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바로 이런 냄새가 날 것만 같다.
악취가 환기구를 타고 스멀스멀 내 집으로 들어온다. 매일매일.
그래서 요 몇 달간은 집에 있기도 괴로웠고
잠시 외출을 했다가도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두려웠다.
나만 유독 까탈스러워서 나만 이런 불평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빌딩 안의 사람들은 빌딩 메인 도어를 열면 안에서 확 풍기는 악취에 저마다 '의성어'를 내뱉기 일쑤였다. What the... 소리를 정말 여러 번 들었다.
누군가는 "이건 무언가가 죽어가는 냄새야"라고도 했다.
무언가가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건 음식 냄새니까. 나는 알고 있다.
정말 이상하게 끓인 김치찌개와 정말 괴상하게 만든 된장찌개를 합친 뒤 3년 동안 방치한 그런 냄새니까.
매일 같은 시간에 (오후 4시 이후) 시작되는 냄새니까.
누가 이런 음식을 만드는지 찾아내서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기 집에서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만들어 먹겠다는데 그걸 뭐라고 하겠나.
분명 아파트 관리실에 빗발치는 항의가 접수되었겠지만 몇 달째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
이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나는 떠난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 악취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다른 곳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내 노력, 내 열심, 내 인내심으로 악취가 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으니
나는. 떠난다.
지금도 내 거실에 악취가 한가득 퍼져있다. 돌아버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