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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Jun 08. 2021

보스턴 MFA에서 딱 한 시간만 쓸 수 있다면

Museum of Fine Arts

뮤지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정말 그렇다.

동네마다 도시마다 주(State) 마다 법이 달라서 보스턴 mfa 가 언제부터 다시 관람객을 받기 시작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2021년 6월, 입장에 성공했다.


코로나 이전엔 분명 현장에 직접 가서 표를 사고 즉시 입장도 가능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보스턴에 널려(?) 있는 수많은 대학교에 연관된 학생, 교직원 등등은 모두 다 공짜로 슉슉 잘도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코로나 이후가 된 지금은 달랐다.

일단 현장 즉석 입장은 불가능했고 미리 홈페이지에서 표를 구매해야 한다.

날자를 정하고 심지어 입장 시간도 정해서 표를 골라야만 한다.

예를 들면 7월 7일 오전 11시-12시 입장.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아마도 관람객의 숫자를 통제하려는 방법인 듯싶다. 보스턴 시민도 아닌, 보스턴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도 아닌, 뮤지엄 회원권도 없는 나는

$25를 결제했다. 대부분의 뮤지엄은 같은 가격이다.

요즘 보스턴 mfa에서는 '모네' 특별 전시회가 진행 중이었는데 나는 그 표를 구입하지는 못했다. 내가 가려던 날짜에는 이미 표가 매진이었다. 뭐 괜찮다. 옛날에 다른 데서 봤다. 그리고 살다 보면 기회는 또 오니까.


뉴욕 메트로폴리탄 생각하고 들어가면 크게 낙심한다

짧은 일정 속에서 왜 굳이 뮤지엄 관람에 시간을 쓰려하냐며 보스턴에 정통한 지인이 나를 향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시하지 마, 그래도 세계에서 14번째로 큰 뮤지엄이래

아, 그래? 진짜? 지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어느 뮤지엄이든 로툰다는 있지


웹사이트에서 구입한 표를 앱에 저장하든 프린트를 해서 뽑아가든 아니면 구입한 이메일을 가져가든 정문 앞에 가면 거기서 확인하고 들여보내 준다. 구입내역 이메일을 보여주면 건물 1층 저쪽 구석에 가서 표를 다시

받아 오라고 한다. 줄 선 사람들이 있거나 기다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없으니 모든 것을 다 둘러볼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한다. 지도를 보고 연구하려면 시간이 또 흘러가니

이런 건 전날 미리 연구를 해놨어야만 한다.

나는 유럽관으로 갔다가 Art of Ancient of World를 둘러보고 맨 꼭대기로 올라가서 전체를 한눈에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동선을 짜 놓고 들어왔다.


고흐네 고흐

저 멀리서 이 그림이 보였다. 어라, 고흐네? 홀린 듯 그림 앞에 서니 정말 고흐였다. 제목은 Ravine, 1889.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인 고흐의 First Step과 어딘가 많이 닮아 있는 그림이었다. 그래서 한눈에 알아봤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없다. 얼른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B.C 4000-3500 년에 왜 때문에 이런짓을


난 참 이런 게 신기하다. 왜 그토록 옛날부터 사람들은 이런 걸 만들어서 내가 '나' 임을 알리고

나만의 것에 열광했을까.

시간이 없다. 이동하자. 이 건물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전체를 내려다보자


쫌 실망


사진에 보이는 사람들 중 90% 이상은 마스크를 벗고 있다. 왜냐하면 뭔가를 다 먹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다들 테이블에 앉아 뭔가 먹고 마시고 있고 서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것이다. 내려다보고 있자 하니 갑자기 살짝 패닉이 되면서

'나 여기 이렇게 오래 있어도(50분) 되는 걸까' 불안이 밀려왔다.

대개의 경우 어느 뮤지엄에서든 높은 곳에 올라서서 전체를 내려다보면 '우왕~' 하면서 좀 감동이 오는데

여긴 좀 그랬다. 뭐.. 저것이 뭐... 뭐.. 뭐 그랬다.


참 내려오는 계단에서 이런 사인을 보았다. 이런건 처음봤다.

참으로 직관적이다. 반반.

보자마자 피식~ 웃었다. 내가 왜 웃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

디자인의 '디' 자도 모르는 나라서 그런가. 만약 내가 이 디자인을 상용화할지 안할지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높은 사람이었다면 이걸 내 앞에 가져온 디자이너에게 '꺼져' 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아닌 것이다.


보스턴 MFA에서의 한 시간. 대략 이렇게 흘러갔다.

세계 3대 박물관은 괜히 3대 박물관이 아니고
14번째 규모의 박물관은 괜히 14번째 규모의 박물관이 아닌 것.
보스턴에 소재하는 대학 학생증 소지자라면 맘껏 다니고 즐기시길.
나는 아마도 다시 들어가는 일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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