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밤 Aug 05. 2021

책을 사고 싶지 않다

좋은 글은 읽고 싶다

어른들이 '모든 것에 때가 있다' 라고 말씀을 하실때면

속으로 피식~ 했었다. 세상엔 그 이야기와 상충되는 별의별 속담, 격언, 문구들이 하도 많아서 당장 말대답을 퐁당!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있어서 적어도 '종이책'과 관련해서 저 명제- 모든 것에 때- 는 고개를 끄덕끄덕 수긍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책은 살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고 웬만해서는 더 이상 구입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이제는 정말 웬만하지 않고서는 종이책을 구입하지 않는다.

결혼 후 이제껏 치른 17번의 이사 때문에 짐 중의 짐, 애물단지 중의 애물단지 종이책이 지긋지긋해진 면도

없지 않지만 더 큰 이유는 내가 지금 좋다고 읽는 책이 3년 뒤엔 싫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7번의 이사 때문에 17번의 검열을 통해 엄선하고 엄선되어 현재 우리 집에 남아 있는 책들은

아마도 언젠가 18번째 이사를 준비하는 동안 몇 권은 또 정리되어 새로운 집으로 함께 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새집에 도착해서 짐을 푸는 순간 또 몇 권은 그대로 버려지거나 버리지 않는다고 해도 내 서가에는 꽂히지 않게 될 거고. 나는 이 돌고도는 순환을 잘 알고 있다.

책은 종이를 싸악 싸악 넘기면서 읽는 맛이 제격이지
종이책, 거기에 찍힌 활자에 열광, 중독

17번의 이사와 나이 먹고 찾아온 '노안' 그리고 왜 이런 책을 사서 읽었지? 라며 몇 년 전 이런 책을 구입하고 있던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현재의 나를 깨닫고 이런 내가 싫어져 이제는 종이책 구입을 멈췄다.

(댕강! 싹뚝! 멈춘 것은 아니고. 살짝 멈췄다. 2020-2021년 한 해 동안 5권만 샀다. 딱 5권)

이 다섯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 실험(?)을 스스로 해봤다.

같은 책을 종이책, 전자책으로도 읽어보고 같은 저자의 다른 책도(내가 아직 갖고 있는) 종이책, 전자책으로

다시 읽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결심했다. 이젠 종이책 그만 사자.


내가 좋아하는 작가, 저자들은 결국 내게 너무 익숙해서 이젠 아무리 새로운 책을 사도 알던 문체, 알던 흐름, 알던 결말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들도 늙고 낡고 하려던 이야기도 슬슬 동이 나고 있겠지.

이곳에서 발행되는 영문 책들은 비싸고 읽는 속도가 느리다.(영어라서. 흑흑)

한국에서 발행되는 책들은 모국어라 쓱쓱 잘 읽히지만 배송받으려면 비용이 책값보다 더 많이 든다.

무엇보다도 요즘 트랜드에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중인지 아니면 직접 서점에서 내 눈으로 보고 구매를 하지 못해서인지 받고 나서 펼쳐보면 폰트, 레이아웃, 책 표지와 용지 등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이 너무 요란하달까. 내용을 읽기도 전에 요란해서 피곤한 책들.


책은 사고 싶지 않다. 그러나 좋은 글은 많이 읽고 싶다.좋은 글을 많이 많이 읽어서 딱딱해지는 내 생각과 내 마음을 말랑하게 유지하고 싶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남들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작가' 로서 나는 지금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트랜드에  딱맞는 소리를 지껄이는 중인가.

아휴 모르겠다.

그냥. 나는 그렇다. 지금은.


작가의 이전글 댄스곡에 울컥 Permission to Danc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