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알겠다
눈이 '나쁠 수'는 없다. 세상 어떤 눈이 '나쁜 눈' 이 될 수 있겠는가.
눈은 좋다 나쁘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될 테지만 우리는 어려서부터 아주 자주, 종종, 그렇게 말하며 살아왔다.
옳게 바로 잡아서 표현하려면 '시력'이 나쁘다라든지 좋지 않다라든지 그렇게 해야겠지만 말이다.
테레비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보면
하루 진죙일 콤퓨타 게임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책을 그렇게 엎드려서 보면
짬만 생기면 핸드폰만 손에 들고 히죽 거리고 있으면
야 너 그러다가 눈 나빠져 너 금방 눈 나빠진다
이런 소리를 귓등으로 듣고 흥흥 췟췟 했던 과거의 나를 참회한다.
물론 나는 자연적으로 늙어가는 노화의 일환에서 내 눈이 '나빠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늙을 때도 되었다. 낡을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체험하지 못하고, 겪어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살아오던 불편함이 이렇게 단기간에 내 삶의 질을 망가뜨리려니 예상하진 못했다.
시력검사 판을 앞에 두고 '어.. 어... 안 보여요. 어... 잘 안 보여요.' 이러는 친구들을 보면서
아니, 진짜 저게 안 보인다고? 위에서 두 번째 줄 저렇게 큰 숫자가 안 보일 수가 있나?
이랬던 과거의 나를 회개한다.
시력이 좋지 않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를 알고 싶어서 눈도 실눈으로 떠보고 (실눈으로 뜨면 더 잘 보였음) 살짝 초점을 잃도록 일부러 눈을 괴롭혀보기도 했었다.
안경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도 안경이라는 것을 좀 썼다 벗었다 하면서 멋지게(?) 살아보고도 싶었다. 무언가에 골몰하고 골똘히 집중하는 냉정하고 건조한 도시 여자. 허허헛. 이런 환상 같은 거.
(얼마나 바보 같은 환상인가)
올 해를 보내며 내 시력은 현저히 나빠지고 있다.
운전을 할 때면 차선이 얇은 두 줄로 보이기도 하고 3D 입체 영상처럼 얇게 위아래로 겹쳐 보인다.
장을 보러 가면 포장지에 쓰인 깨알만 한 성분 분석표를 읽는 것을 낙으로 여기던 내가 이젠 그런 것은
잘 살피지도 않고 예전부터 먹던 것으로 휙휙 잡아서 구입하고 있다.
굳이 꼭 읽어야만 한다면 폰을 꺼내서 돋보기 앱을 연 후 그것으로 확대를 해서 보기도 하는데
그러고 있는 내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 중 한 두 명은 꼭 내 옆에 멈춰 서서
아니, 아이폰에 그런 기능도 있었니? 라며 참견을 한다. 다들 나와 같은 처지, 같은 신세였던 것이다.
잠자기 전 침대에서 잠깐 읽던 책 같은 건 손 놓은 지 꽤 되었다.
일일이 쓰고 나니 슬프다.
슬플일은 아니다.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도 따져보면 슬픈일이다.
photo by Josh Calabr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