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 버리자
며칠 전 내가 좋아하는 어느 뮤지션의 인터뷰에서 들었다. 그녀가 이렇게 표현했다.
영상을 보고 있던 나는 고개도 끄덕이고 살풋 미소도 지었다.
그래, 그럴 때가 있지.
마음은 살아있는 것이라서 돌봐줘야 한다.
살아있지 않은 물건도 돌보지 않으면 상한다. 상온에 놔둬도 여간해서 썩지 않는다는 맥도널드의 감자튀김도
언젠가는 썩는다. 100일쯤 놔두면 분명히 썩을 거다. 아마도.
언제나 그 자리에 우뚝 묵묵히 존재하는 것 같은 '가구'들도 돌보지 않으면 늙는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싶겠지만 진짜다. 오며 가며 손바닥으로 쓰윽~ 한 번씩 해주는 가구와 몇 년째 한자리에서 가끔씩 물티슈로 먼지만 제거해주는 가구와는 비교 불가할 정도로 컨디션이 다르다.
무생물인 '가구'도 이런데
하물며 살아있는 내 마음은.
상한 마음, 아픈 마음, 다친 마음 등등은 일단 기본 가지고 있던 그 마음에서 다시 살살 고치고 달래서 치유를 할 수도 있다.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들겠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마음 자체를 깡그리 들어낼 필요까지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썩은' 아음. 이건 어떻게 하나.
썩은 걸 먹는 사람은 없다. (1.4 후퇴 때 이야기, 임진왜란 때 이야기.. 그런 거 끌고 들어오지 말자)
썩은 건 심지어 동물도 먹지 않는다. 먹으면 자신이 아파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썩은 내 마음은 빨간 약을 바르고 반창고로 잘 가려 놓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썩은 마음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도 않는다. 전염력이 있어서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내 썩은 마음에 감염되기 아주 쉽다. 블루투스 전송보다 몇만 배 빠르다.
마음이 썩은 것 같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1. 썩은 마음 전체를 밀봉해서 버려 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을 끼운다. 썩은 부분만 도려내고 버려야지 하면 안 된다. 그냥 싹 버려야 한다. 미련, 후회, 망설임, 주저함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도 같이 바뀌면 더 좋다.
주변의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더 좋다.
하늘이 굽어 살피시고 신의 은혜가 미치면 더할 나위가 없다.
대신 썩은 마음을 혐오하고 버리기로 꽝꽝꽝!! 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한다
2. 더더더 썩게 놔둔다. 그래, 니가 어디까지 썩나 한번 보자 라는 심산으로 놔둔다.
나를 포함한 보통의 사람들이 게으름에 정복당해서 취하는 방법이다.
대중적이고 쉬우며 내가 할 일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멀쩡했던 육신도 같이 망가뜨릴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성공적으로(?) 더더더 썩어서 언젠가 결국 '발효'가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면
썩은 마음이 누구도 알 수 없는 어떤 경지에 다다른 '발효된 마음'으로 탈바꿈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위험스럽다. '발효된 마음' 이 유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발효된 마음' 이 독극물일 수도 있다.
발효된 결과가 언제나 된장, 요구르트, 김치처럼 유익한 결과만 나오는 건 아니니까.
이제껏 내가 살아온 경험에 의한 데이터와 주변 믿을만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에게서 받은 데이터를 통합해보니 나에게 맞는 선택은 언제나 1번이 옳다. 앞으로 살아가면서는 더더욱 그렇다.
예전에는 2번을 선택한 뒤 식음을 전폐하고 끙끙 골머리를 앓으면서까지 썩은 마음을 '발효’ 도 시켜보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식음을 전폐할 수 없는 나이에 이르렀고- 한 끼라도 거르면 두통으로 며칠을 고생- 그 선택을 뒷받침할 체력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냥 이젠 1번을 선택하고 싶어졌다.
2번이 주는 괴로움도 싫거니와 2번을 해봤자 그다지 별로 좋은 결과물이 주어 진적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렇다.
마음이 썩은 것 같을 땐
버리자
Photo by Matt Seymore/ David.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