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늦은 오후 무렵.
케케묵은 편지들을 한 뭉치 가지고 나와 한 장 한 장 펴서 읽고
장작 집게로 집어 활활 타는 장작불에 넣어 불태워 버렸다.
캠핑 의자를 화덕 앞에 놓고 따뜻한 불기운을 종아리에 받으니 몸도 훈훈해지고 마침 날씨도 선선하고
바람도 서늘 불어 '불장난'을 하기에 딱 좋았다.
편지를 불태우기에 얼마나 주변 환경이 적절했던지 흥얼흥얼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오~~ "
어머, 나는 지금 편지를 불태우고 있잖아. 정말 노래와 맞지 않는 짓이군.
수십 년 간 이 지역에 일어나지 않던 홍수가 왜 내가 살고 있는 이 시점에 딱 발생을 하여
나에게 나름 소중했던 몇몇 물건들을 앗아가고 나는 살짜기 '실의'에 빠졌었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나는 일일이 하나하나 물건들을 분류해야만 했고 그러다가 편지들이 가득 들어있는 어떤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상자 안에는 편지와 엽서 메모 등이 꽉꽉 차 있었는데 그것들 중 70% 이상은 남편과 내가 주고받았던 편지들이고 나머지는 친구들이 나에게 주었던 것들이었다.
남편에게 보냈던 나의 편지도, 남편이 나에게 보냈던 편지도 다시 돌고 돌아 우리의 손에 들려졌다.
솔직히 내가 써서 봉투에 넣고 봉투를 봉하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는 순간, 나는 그 편지와는 영영 이별이고 내가 그 편지에 얼마나 오글거리는 내용을 썼는지 얼마나 엉뚱한 이야기들을 지껄였는지는
그 편지를 다시 손에 쥐고 찬찬히 읽는 일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나는 어쩌면 영원히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잊을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불행인가 다행인가.
내가 써서 내가 보냈던 편지들이 부메랑처럼 다시 내 손에 들려졌고 처음에 나는 낄낄거리며 몇 장을 들춰
읽기 시작했는데 이내 나는 황급히 다시 착착 접어서 봉투에 쏙 집어넣었다.
누가 볼세라.
아이쿠. 이런 편지는 진짜 몽땅 태워 버려야 해. 그렇고 말고.
그래도 추억인데 그걸 왜 불태워 없애냐는 남편에게 그 옛날 남편이 나에게 쓴 편지 몇 장을
쥐어 주고 읽어보라 했더니
얼른 태워서 없애자
라며 나의 의견에 동의했다.
너무 오글거려서 속이 다 울렁거릴 지경이야. 그때 우린 아마도 미쳤던게지.
그런데 그때의 그 기운으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