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쪽은 여자 중학교 저쪽은 대학교. 서울 어느 변두리.
4층에 위치하고 있었던 우리 반 창문에서 그 담장 안을 내려다보노라면 나는 이런 것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 여자와 남자가 키스를 하는 모습. 영화에서처럼 아름답진 않았다.
- 대학생 오빠들이 늠름하게 농구를 하는 모습. 시원하게 링으로 들어가는 농구공은 별로 없었지만 그들은 왜 때문인지 그렇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땀만 뻘뻘 흘렸다. 정말 농구를 못하는구나.
- 얼굴 앞을 철창 같은 것으로 단단히 가린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척척척척 걸어오는 것
- 총보다는 두꺼운 긴 방망이 같은 쇠뭉치를 비스듬하게 들고 척척척척 전진하는 전경들. 나중에 이것이 최루탄이라는 것을 알았다
- 머리에 흰색 안전모 같은 것을 쓰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마구 뛰어오는 남자들. 나중에 이들이 '백골단' 이라는 것을 알았다.
- 꺄아아악 하면서 개미떼처럼 흩어지는 대학생들
그 대학교 안에서 최루탄을 쏘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우리 학교, 여자 중학교에는 그 최루탄 가스가 안 넘어올 거라고 생각을 한 건지 아니면 알고도 그랬던 건지. 맨날 눈물이 나고 코가 매웠다.
교복을 입지 않은 중학생과 대학생을 그들은 어떻게 구별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중학생을 데모하던 대학생으로 오인해서 방망이로 두들겨 팼을 수도 있잖나.
나는 정말 너무 흉흉한 시대를 살았던듯싶다.
우리 엄마는 어린 중학교 1학년 딸을 어떻게 매일 학교에 보냈을까. 나 같으면 안 보낸다. 진짜.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땐 이미 '민주화'는 끝이 나고 학내문제- 등록금 동결이라든지 재단비리 척결 같은- 가 주요 이슈였다. 주먹 한번 머리 위로 올려 볼 기회도, 어딘가 좀 으스스한 음률과 박자의 데모송도 한번 불러볼 기회 없는 대학생활이 펼쳐졌다.
나는 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없다. 광화문에서 월드컵 응원을 해본 적도 없다. 촛불도 한번 들어본 적이 없다.
지난 세월 수많은 열사와 의사와 희생자와 피해자와 도우미와 봉사자와 촛불들의 힘으로
천신만고 끝에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왔는데.
한국 밖에서 보는 한국의 이미지가 점점점점 드높아지고 있는데
왜. 왜. 왜
마음이 이토록 불안 불안하고 간질간질하고 큰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내 소중한 한 표, 내 아들과 내 남편의 표까지 3표는 한국보다 열흘정도 빨리 결정이 될 것이다.
이 3표를 행사하려고 우리는 비교적 먼 길을 떠나야 한다. 각자 스케쥴 조정도 해야한다. 슬리퍼 질질 끌고 동네 초등학교나 동사무소로 가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내 앞에 당면한 크고 작은 문제들이나 신경써야 하는 것이 나에게 더 어울리는 일이라는 것도 잘안다.
내 의견이나 목소리는 지렁이가 꿈틀하거나 굼뱅이가 데구르르 구르는 정도의 임팩트라는 것도 안다.
정작 대학에 들어갔더니 '민주화' 가 다 끝이나서 주먹 한번 머리위에서 흔들어보지 못했던 '미안함'을
다음주에 꼭 투표를 하러가서 조금이라도 덜어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