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여자 화장실만 사용하고 싶다

그게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by 푸른밤


코로나라는 게 뭔지도 몰랐을 때, 그런 시절에. 한 3,4년 전쯤

동네 스타벅스에 갔는데 음료수 컵 겉에 시럽이 흘러 손이 끈적해져서 손을 닦으려 화장실로 갔다.

익숙했던 매장이라 어느 쪽이 여자 화장실이고 어느 쪽이 남자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문고리를 잡으려던 순간, 내가 들어가려던 여자 화장실에서 벌컥! 남자가 나왔다. 우엥? 내가 착각했나 싶어서 눈을 똥그랗게 뜨니

방금 그곳에서 나온 남자가 손짓으로 문 앞을 가리키며 묘하게 씰룩~ 웃고 간다. 뭐냐, 그 표정은. 왜 그렇게 묘하게 웃는 거냐. 기분이 나쁘구나. 남자여.

손가락을 따라 화장실 문을 살펴보니

여자 화장실 사인 옆에 남자 표시가 같이 붙어 있었다. 맞은편 남자 화장실 문에도 같은 사인이 붙어 있었다.

멀쩡한 남자 여자 각각의 화장실을 이제 여기도 저기도 남자든 여자든 사용하라는 표시였다.

이런 짓은 왜 하는 것이냐. 왜 왜 왜

나는 내 집이 아닌 밖에서 화장실을 가는 것에 무한한 용기와 원대한 결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데

생판 모르는 남자가 앞 서 사용했던 화장실에 들어가서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짓은 왜 하는 거냐 혼자 펄펄 뛰며 기분이 상한채 매장을 나왔다. 그 이후 다시는 거기에 가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콕 박혀 한참을 지내다가 작년, 2021년 여름에 처음 엉금엉금 동굴 밖으로 나와 보스턴에 잠깐 여행을 갔었고 용기를 내어 사방이 트인 테라스 식당에서 밥도 사 먹고 시간이 조금 남아

보스턴 박물관에서 두어 시간 시간을 보냈는데 그날 이것을 보았다.

짬짜면 같은 안내판


반인반수도 아니고 반녀반남


이런 디자인을 누군가 생각해내고 이것을 제안했는데 이것이 심사에 통과하고 Ok 허락이 나서

국립박물관에 떡~ 하니 붙게 되었다 생각하니 헛웃음이 났다.

무엇보다도 디자인을 참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합니다. 디자이너여.


급기야 2022년 7월. 지지난 주 목격한 새로운 사인은 바로 이것. 몬트리올 뮤지엄. 캐나다.

웃기다


나는 이 사진을 찍으려고 저 문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 없어지기를 한참 기다려야만 했다.

이 사인을 한번 해석해보자. 이 표지판에 의하면 이 화장실은 남자, 여자 그리고 그다음은 뭔가? 중간 의미는 뭘까? 남자와 여자 중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사용하라는 건가. 중간에 낀 그림을 넣어 놓은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보스턴 박물관처럼 딱 저렇게 하나만 그려놓는게 낫지 않나 생각했다.

허허. 모르겠다.

저런 자세한 설명 표지판이 앞에 떡하니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남자'였다. 여자도 한 명 있었는데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많은 여자들은 저 표지판을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여자 표시만 붙어 있는 화장실을 찾으려 뮤지엄 앱을 켜는 사람도 있었고 주변의 안내원에게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화장실을 가는 것을 포기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미국, 특히 뉴욕 등 대도시의 공중 화장실이 얼마나 처참하게 더러운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미친 듯이 더럽다.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남자 화장실은 여자 화장실보다 언제나 더 엉망이다 (엉망이랜다. 남편에게 늘 물어본다. 화장실 어떘어?)

심호흡 100번을 하고 갈까 말까를 천 번을 고민한 후 가는 공중 화장실을 남녀가 같이 동시에 사용한다?

나는 기필코 여자'만' 사용하는 화장실을 찾거나

참거나

포기하거나 (그게 그건가)

개인 변기를 들고 다니던가 (아...... 그게... 캠핑용.. 그런 거)


나는 왜 사람들이 이런 일을 벌이는지 안다. 하지만 나는 괴롭다. 그리고 대다수의 나 같은 여자들도 괴롭다.

여자'만' 이용하는 화장실은 이제 세상에서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니

그럼 이제 나는 어째야 하나.

살다 살다 이런 것까지 염려하며 살게 되다니. 에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