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은 어디인가
잠시 몬트리올에 다녀왔다. 국경을 차로 넘었다.
2019년 3월 이후 다른 나라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실로 3년 4개월 만의 '해외' 여행이었다.
캐나다 쪽으로 넘어가는 국경을 통과할 땐 평일이라서 그랬던지 기다리지도 않았다.
입국을 관리하는 캐나다 오피서는 질문도 많이 하지 않았다.
왜 왔냐 - 여행
얼마나 있을 거냐- 사나흘
어디로 가냐- 몬트리올과 오타와
그래, 좋은 여행 하삼. 끝. 이것이 국경에서 나눈 대화의 전부였다.
몬트리올은 젊은 도시였다. 활기찼다. 깔끔했다.
불어'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국어와 영어'만' 할 줄 아는 우리는 당황할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구글 번역기도 있고 만국에서 통용되는 손짓 발짓도 있고 하여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없었다.
2시간 서쪽에 있는 도시 오타와는 실망스러웠다.
오타와의 랜드마크 몇몇만 빼면 딱히 볼 것도 놀 것도 할 것도 없는 도시였다. 주말 대낮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도시가 훵~ 하다고 느껴졌고 무엇보다도 내가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성인 남자와 동행을 하는 중인데도 내가 별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데에는 원인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샌프란이나 필라만큼은 아니겠지만 마약환자들이나 홈리스들도 많이 보였다.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변에서 초라한 규모의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불어를 전혀 못하는 나도 중간중간 트뤼도를 욕하고 있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는 정도로 목청을 높여 트뤼도의 이름을 많이 부르고 있었다.
일정을 급히 수정하고 일찍 오타와를 떠났다.
여행의 마지막 날 다시 왔던 길을 고대로 밟아 캐나다-미국 국경에 이르렀다.
아무것도 안 살 거지만 그래도 뭐가 있나 구경이나 하자라며 들어갔던 면세점에서 고작 30분 정도 지체했을 뿐인데 차가 몇 배로 많아졌다. 가장 짧아 보이는 줄 뒤에 얌전히 차를 붙였다. 어서어서 짧아지기만을 기다렸다.
가장 짧아 보였으니 앞 차가 빠지는 속도는 가장 느렸다.
인생, 언제나 줄을 잘 서야 한다는데. 늘 이렇지 뭐.
깐깐한 입국 심사원이 괜한 트집을 잡는 중인가? 날씨도 더운데 작작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우리 차례가 되었다. 죄진 것도 없는데 늘 주눅 드는 입국심사.
오피서의 얼굴이 더위에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물이라도 먹을래 물어보고 싶었지만 당연히 받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입도 떼지 않았다.
굳은 표정의 그는 우리가 내민 서류 두 가지 중 하나는 볼 필요 없다며 다시 창문으로 건네주었다.
들고 있던 하나의 서류마저도 손에 들고 보지도 않는 것 같더니 딱 네 가지를 물었다
어디 갔다 오냐 - 몬트리올, 오타와
며칠 있었냐 - 사나흘
뭐하는 사람이냐- 학생과 주부
어디 사냐 - #$%
Welcome home!
엥? 끝?
웰컴 홈. 여기는 내 Home 인가.
몇 년 만에 한 번씩 들어가는 내 나라에서도 들어보지 못하는 말. 웰컴 홈.
누가 나에게 웰컴 홈이라고 말해 줄 것인가.
내 진짜 집은 이제 어디일까.
언젠가 육신을 벗는 날이 오면 신이 나에게 똑같이 말해 주실까.
너무나도 신속 정확하게 입국 심사를 마치고 웰컴 홈이라는 상냥한 인사말도 들었는데 갑자기 심란해져서 앞으로 쭉 뻗은 고속도로만 한 30분 조용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