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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Dec 01. 2018

크리스마스에는 두 발로 걷고 싶다

지팡이 없이, 목발 없이 

거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셀폰을 들어 힐끗 쳐다봤는데 금요일. 11월. 30일 이랜다.

아니, 이럴 수가. 그럼 내일이 12월이라고?

평생 처음. 심.하.게.다.쳤.다.


그래서 지금 잘 걷지 못한다. 다친 초반에는 아예 혼자 일어날 수도 없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두 달이나 지났고

두 달만큼 나아져서 '나무늘보'처럼 집안에서 살살 움직일 수 있다.

남편이 나를 '나무늘보'라고 불러도 화낼 필요 없다. 솔직히 나는 '나무늘보' 보다 느린 것 같기도 하니까.

나무늘보를 모욕하지 마. 나는 그것보다 더 느려.


지난 두 달 동안 내게 벌어진 이 사건이 미친 영향력은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내 안에. 내 마음속에. 내 정신 속에 미친 영향

둘째, 내 밖에. 타인들, 관계들. 실제적인 내 몸뚱이에 미친 영향

두 가지 부분에서 모두 나는 다치기 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것은 단지 내 기분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 느낌적인 느낌은 내 주관적인 것이라 치자. 

하지만 내가 전신마취를 하고 내 몸에 내 다리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던 그 순간에 실제적으로 내 다리뼈를 만지고 내 살을 봉합했던 의사는


니 다리는 다치기 전으로 돌아갈 순 없지. 넌 이미 다쳤으니까


라고 냉정을 넘어 건조하게 말했다. 너무 건조하게 말해서 뭔가 심오하고 깊은 철학적 의미가 담긴 코멘트가 아니었을까 아직도 되씹는 중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같은 그런 풍의 어떤 깨달음인가?

너는 다쳤기 때문에 다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아.... 뭔가 있어 보인다. (이런 헛생각을 많이 한다)


심지어 한 술 더 떠 재활을 도와주는 치료사는 치료 첫날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무릎이 110도까지만 굽혀지면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어.
다치기 전처럼 될 순 없다구. 한계는 있을 거야.


의사들은 모두 이렇게 말하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일까. 

내 몸에 붙어 수십 년간 자유자재로 움직이던 다리가 막대기처럼 뻣뻣해진 걸 보고 느끼는 환자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나 야속해서 어떤 날은 마루에 앉아 엉엉 울기도 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는 캔디, '나애리! 이 납뿐 계집애!' 달려라 하니 같은 캐릭터들은 

이렇게 야속한 경우에 더더욱 분연히 박차고 일어나 한계를 뛰어넘고 울분을 승리로 승화시켜 결국엔 그들이 원하던 것을 쟁취하는 것으로 훈훈히 이야기가 마무리되던데. 나는 그렇지 못하고 좀 헤맸다.

책상다리, 아빠 다리, 뒤로 접어 엉덩이에 발이 닿던 유연한 내 무릎은 마음속으로 안녕~하고 이젠 110도 정도만 꺾어진다면 이거라도 감지덕지, 감사합니다 하는 심정으로 살라고?

 

내 맘 아프지않게 그 누구보다 더! 해앵~ 복하게 살아야 해 모든 걸 잊고 (모오든거얼 이이꼬오~)



누구를 향해 서운해하고 무엇때문에 울분에 가득찼는지 혼자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 다리는 시간이 지나면 낫는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낫는 병. 그렇다. 이건 정말 희망적인거다. 내 다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좋아지고 있다.

혼자서는 침대 아래로 다리를 내리지 못하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저런 지팡이를 다치지 않은 다리 쪽 손에 들고 달달달... 벌벌벌...하면서 혼자 움직일 순 있잖나. 비록 '나무늘보' 같더라도.

내 마음과 내 다리는  딱 여기까지 와 있다. 

지금 당장 못하는 것, 안 되는 것을 바라보고 손에 안 잡힌다 징징대지 않고 현재 할 수 있는 것, 잘되는 것에 감사하며 조금씩 앞으로 가보는 거다. 너무 길고 멀어서 끝이 아득한 계획 같은 건 세우지도 못하겠다. 조금 가다가 질려서 그만둘 것 같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그렇다. 크리스마스 정도가 내가 세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목표다.

단촐한 구성원이지만(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크리스마스에는 세 식구가 어쨌든 다시 만날 거고 나는 왠지 크리스마스를 마음속의 결승선처럼 정해놓고 뭔가 이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지팡이 없이 자연스럽게 옆 사람과 나란히 비슷한 속도로 걷게 되면 좋겠다. 살짝 느긋하고 느릿하게 걷더라도 

리드미컬하게 두 발로 걸어서 크리스마스 기분 물씬 나는 어느 커피집에 들어가 창밖을 보며

이런 날이 왔네

라며 웃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다. 


크리스마스에 나는 어떻게 되었는지, 이 목표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또 포스팅을 해야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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