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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Apr 15. 2019

난생처음 내가 키에서 밀린 느낌이 든다

진짜로. 난생처음



내가 이 말을 전화로 남편에게 했더니 수화기 넘어 그는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맨날 밀린다는 생각을 하며 이제껏 살았는데. 너는 평생 처음이라고?

응. 여보. 난 처음이야.

적어도 이 나라에선 그렇네.




여자 키 165.

내 기준으로 내 키는 나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꽤 적응하기 좋은 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특히 반백살을 바라보는 내 나이 기준으로 쳤을 때 내 키 165는 괜찮은 키였다.

여자 키 165는 플랫 슈즈를 신으면 가진 길이 그대로를 반영하여 거대하거나 무섭지(?) 않고

또 어딘가 한껏 힘을 주고 빳빳하게 나서야 할 때 하이힐을 신어주면 웬만한 남자랑 나란히 서도 눈을 치켜뜨지 않아도 되는 그런 '적응력' 좋은 키인 것이다.

그래서 이날 이때껏 나는 내 키에 불만 없이 살아왔다.

요즘 애들 평균 신장이 수십 년 전 사람인 내 또래 사람들보다 한결 커졌고 발육도 좋아져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훤칠, 늘씬한 젊은이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두어 달 지내는 동안 내가 갑자기 한없이 작아진 기분이 들었다거나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 안에서 푹 파묻힌 느낌이 든 적은 없었다.

아직도 여자 키 165는 타인으로부터 한없이 밀린다라는 느낌을 받는 키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아니, 아니 아니다. 미국에서도 그렇다.

드넓은 미국 땅 몇 군데 도시에서 살아봤고 지금은 온갖 인종들이 집결했다는 그런 도시에서 살고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살면서 '으.... 나만 쬐끄맣네.' 라는 기분을 느껴본 적은 없다.

왜냐하면 내가 스치고 지나는 거리, 나를 지나쳐가는 군중들 속에서 나는 여러 사람들을 마주치기 때문이다.

기골이 장대한 6척 장신(약 180센티미터. 이순신 장군님이 6척 장신이었다는 속설이. 믿거나 말거나) 흑인 아저씨가 내 어깨 옆을 지나가기도 하지만 뒤이어 내 어깨쯤 오는 키를 가진

단단하고 야무진 몸매의 히스패닉 아줌마와 서로 스치기도 하니까 말이다.

한국이나 여기나 큰 사람,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마른 사람. 다 그런 거 아니겠나.

그런데!!



입국 심사를 하려고 줄을 섰을 때부터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받고 있는 그 기운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몰랐던 것 같다.

한가한 평일 오전 시간이라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그래도 두 줄로 선 어느 중간 즈음에 나는 내 여권을 손에 꼭 쥐고 서 있는 중이었다.

한가하고 조용하고 깨끗하고 쾌적한데.... 참.... 이상하군. 낯선 나라라서 그런가? (코펜하겐/덴마크)

이렇게나 허술해도 국가보안에 치명적인 문제가 없나 싶을 정도로 허술한(내 기준에) 입국 심사를 받고 공항 청사로 나오니 안쪽과 달리 떠나는 사람 도착한 사람 마중 나온 사람 서로 얽혀 꽤 복잡했다.

그런데 또 그때 뭔가 이제껏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이상한 기분이야. 이건 정말 이상한 느낌이라고.




여기서 알아차렸다. 생전 처음 느낀 이 기분이 어디에서 온 건지.

Strøget 거리. 이 길 위에서.

사진으론 느낌이 안 오네


이 길 저쪽 편에서 내 쪽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척척척 걸어올 때 나는 금방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과 내가 한 덩어리로 섞여 서로 스치는 몇 초 동안 더 확실히 느꼈다. 그 이상한 기분을.

이 나라에 도착해서부터 몇 시간 동안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이-90% 이상- 나보다 훨씬 훨씬 키가 크고 몸집이 좋았던 거다. 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여자들의 키도 상당히 커서 평생을 165 센티미터에 만족하고

살았던 내가 그 여자들의 어깨 정도에 닿는 그런 형국이었다.

6척 장신? 180? 아아~ 아마도 여기 남자들에겐 6척 장신은 꼬꼬마 취급을 받을 것만 같다.

여자들이 기본 6척 장신인 것 같고 남자들은.. 글쎄..

코펜하겐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는 키 큰 여기 남자들을 '9척 장신들'이라고 부르며 지냈다.

여기 스트뢰에 거리에서 왔다 갔다 하는 성인 여행객+성인 현지인을 모두 모아 옛날에 새 학기 때 학교에서 하듯 키 순서대로 줄을 쫙 세우면 나와 내 일행은 앞쪽에서 5% 안에 들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생겼다.

나를 뺀 대다수가 나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눈이 달려있고

내 정수리가 이들의 어깨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기골이 장대' 하다는 말의 의미가 가슴속에 확 꽂히도록 튼튼! 해 보이는 굳게 쭉 뻗은 정강이 뼈와 강인해 보이는 그들의 관절 마디마디가 (나는 투시력을 가졌단 말인가!) 옷으로 가려지지 않고 고스란히 느껴졌다.

상대방을 계속해서 쉴 틈 없이 올려다봐야 한다는 건 아주 피곤한 일이었다. 

살면서 누구나 어렸을 때는 다들 그렇게 살았을 테지만 그런 기억이 사라진 지금 다시 이렇게 군중 속에 

쏙 파묻히고 팔을 올려 팔락 거리며 동동 뛰어야 겨우 내가 보일 것 같은 느낌은 정말로 생소했다.


바이킹 후손이잖아


내 동행이 나에게 속삭였다. 옳지, 그렇구나. 바이킹. 맞네 맞어. 바이킹 후손.

뭐 솔직히 바이킹이 딱히 뭘 하던 사람들이었는지 잘은 모르지만. 그냥 어감만으로도 딱 느껴지지 않나.

바이킹의 후손=기골장대=뼈에 붙은 고기 호방하게 뜯는. 그냥 막 그런 거.




평생을 매일 키에서 밀린 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남편의 말에

예전 같으면 꺄르륵 웃으며 '에이, 무슨. 그게 뭐라고' 라며 공감 제로인 대답을 했겠지만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된 나는 '어머, 평생을 매일? 가엾어라'라고 말해 주었다.

음..........

그냥 하던 대로 말할 걸 그랬나? 괜히 진지하게 대답한 듯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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