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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Apr 01. 2019

탑승까지 1시간 남은  공항에서 하는 일

수속, 짐 검사 다 마치고 난 후. 그리고 한 시간.

이건 참 애매한 거다. 한 시간.

두 시간만 되어도 뭘 좀 해볼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도 같은데.

물론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공항이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있는 공항인지에 따라서 탑승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의 종류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비즈니스 여행으로 비행기를 지겹도록 타는 어떤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비행기의 'ㅂ' 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치겠지만 가뭄에 콩 나듯 아주 가아~끔 한 번씩 비행기를 탈 기회를 잡는 나는 공항이 지니고 있는

긴장감과 역동성, 그리고 뭐랄까... 어떤 서글픔(이건 그냥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럴지도)을 맛보며 어슬렁거리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아무튼.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머무는 공항에서든,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서 있는 공항에서든 탑승까지 '한 시간' 이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애매한 것이다.



인천공항이라면.

음.. 웅장함과 화려함이 그 어느 공항보다도 월등한 인천공항.

면세점이 줄줄이 늘어서 있지만 한 발자국도 그쪽으로 내딛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의미인즉슨 '나는 쇼핑할 돈이 없다'라는 뜻. 대신 쇼핑에 열광하는 내국인 외국인들을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하다. 최근에 깨달은 건데(한 달 전 인천공항에서) 사람들이 쇼핑을 할 때 각자 갖고 있는 '눈빛'은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무척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인천공항처럼 화려한 공항에서는 사람 구경을 하며 내 탑승 게이트를 찾아가다 보면 한 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게다가 인천 공항은 넓잖나.



이렇게까지 넓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던 상하이 공항


인천 공항 아닌 다른 나라, 도시의 공항 (비교적 대도시에 위치한 공항)


흐음... 내가 지금 내 나라 안에 있지 않다는 긴장감이 외국 공항에서는 기본으로 탑재가 되기 때문에(나는 어딘가 좀 촌스러운 경향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노력하며 될 수 있는 대로 내가 탑승을 해야 하는 게이트 근처로 빨리 가서 빈 의자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일단 탑승 게이트 근처에 가서 모든 것이 문제없이 잘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난 뒤

셀폰을 열어 시간을 체크하고 혹시 아직도 탑승 시간까지 40분 이상이 남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것이다.

혹시 공짜로 잡히는 와이파이가 있나 해서 셀폰 환경설정을 만지작 거릴 수도 있다.

긴장이 살짝 풀리면서 카페인을 섭취하고 싶은 욕망이 급격히 밀려오겠지만 '한 시간만 참으면 기내에서 공짜 커피를 마실 수 있을걸' 이라며 커피값을 아껴보려 노력한다 (물 한 모금도 안주는 비행기가 요즘은 왜 이렇게 많아졌는지 엉엉엉)

모든 것이 시중 가격보다 비싼 공항에서 뭔가를 척척 사 먹고, 사 마실 수 있는 사람은

내 기준으로 봤을 때 '부자' 다

공항에 시간을 맞춰 오느라 허둥거리다가 쫄쫄 굶었는데 탑승할 비행기에서는 물이나 한 컵

얻어마시면 감지덕지, 비행시간은 4-5시간. 그런데 비행기 타기 전까지 남아 있는 시간은 40분.

상황이 이렇게 되면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은 다급해진다.

자, 뭔가 먹으려면 지금 움직여야 해. 저기 샌드위치 가게에 사람들 줄 길게 늘어선 것 좀 봐봐.
주문하려면 지금 하라고. 사러 가? 말아? 가? 말아?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결정하지 못하는 동안 이미 탑승을 시작하겠다는 방송이 울려 퍼지고

중국인, 한국인 등등 동양 사람들은 그 방송이 울리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척척척 알아서 줄을 서기 시작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줄을 서는 일에 민첩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공항(이런 도시에도 공항이 있었나 싶은 그런 공항)


이런 공항에서 탑승까지 1시간이 남았다는 것은. 뭐. 솔직히. 할 게 없다.

탑승 게이트까지 잰걸음으로 빨리 가지 않아도 된다.

공항은 괴괴하고 고요하고 적막하다. 분명 성업 중이어야 할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장사를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몇 개의 상점(?)들이 존재할 뿐이다.

샌드위치... 오늘 만들었을까 의심되고 커피.... 하루 종일 커피포트에서 한약처럼 달여졌을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이럴 땐 그냥 다소곳이 구석으로 가서 기내 가방 앞 쪽 지퍼들을 열고 껌이나 스낵 부스러기가 혹시 남아있진 않을까 손을 넣어 휘휘 저어 보는 것이 낫다.

이런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는 1시간은 1시간이 아니고 족히 두어 시간은 되는 듯 느껴진다.

혹시 손바닥보다 조금 크고 살짝 얇은 아무 책이라도 있어서 고상하게 손에 쥐고

그런 거라도 읽으면 (아니면 읽는 척이라도) 좋을 테지만

그런 게 지금 나한테 있을 리가 없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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