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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Jun 14. 2019

당신이 그렇게 말할 때 정이 뚝 떨어졌어요

당신은 아직도 모르겠지만



당신은 아마 아직도 모를 겁니다. 내가 당신에게 그때 정이 뚝 떨어졌다는 것을.

왜냐하면 당신과 나는 여전히 만나면 인사하고, 웃고, 깊지 않은 안부를 묻고 답하는 그런 사이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지만요.


한.. 10년 전의 나였다면 당신은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어요.

10년 전쯤의 나는 내 감정이 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숨기려 하지도 않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러니 당신이 그런 말을 했을 때 10년 전의 나였다면 '당신과는 이제 더 이상 대화 못 함'이라는 내 생각이 내 얼굴에 그대로 표현되었을 거고 그토록 적나라한 나의 표정을 당신이 눈치채지 못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나는 문득문득 그 날이 떠올라요. 당신에게 정이 뚝 떨어진 날이.

당신은 해사~한 얼굴로 너무 잔인한 말을 하고 있었어요. 당신의 얼굴과 당신의 말이 너무 극과 극이어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당신이 일방적으로 하는 말들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세상에나. 저렇게 맑고 밝은 얼굴을 가지고 저렇게 아픈 말들을 서슴지 않고 뱉어낼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기도 해요.

당신은 오래전 젊디 젊은 자식을 잃은 노부부의 심정을 모릅니다.

나도 모릅니다. 당신과 나는 그분들이 겪은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자식을 잃은 그분들을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했어요.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당신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당신으로부터 그분들이 왜 이해를 받아야만 하죠?


그 집에 들어가면 좀 오싹해



라고도 말했어요. 당신은.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 나는 오싹했어요.

어쩌면 당신은 다 키운 자식을 잃은 그분들을 위로하고 애도하는 사이었는지도 몰라요. 사실, 나는 아직도 당신과 그분들의 관계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진 않아요. 하물며 나는 그분들이 누군지도 몰라요. 만나본 적도 없어요. 그분들은  나에겐 그냥 신문 기사나, 잡지 혹은 영화나 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인생의 아픔을 겪은 그런 '이미지로 형상화된' 인물들일뿐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그분들의 집에 방문하기도 하고 그분들과 직접 대화도 나누는 사람이죠.

당신은 직접 구운 빵이나 과자를 들고 그 댁을 방문할 수도 있고 입맛을 돋우는 반찬을 손수 만들어 그 댁에 찾아가기도 했겠지요.

위로의 말도 많이 하고 힘내시라 이겨 내시라 격려도 했을지 몰라요.

하. 지. 만

종당엔 밖에서 내뱉는 말이 '어쩐지 그 집은 좀 오싹하다니까' 라니.




당신은 아마도 몇 년 전과 다름없이 그렇게 순탄하게 무탈하게 잘 지내고 계실 겁니다.

아침이면 그렇게, 주중엔 그냥저냥 그렇게, 주말이 오고 일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그곳(교회)에.

소싯적 돈과 시간과 열정을 들여 헌신했던 아무개 선교단체라든가 그 이후 주욱 이어져온 길고 짧은 선교 여행이라든가 현재 다니고 있을 교회 봉사 등으로 무료하거나 심심하실 틈은 없으셨을 줄로 짐작해요.

나에게 있어서 당신을 나쁜 사람 쪽이냐 좋은 사람 쪽이냐로 딱 무 자르듯 잘라야 한다면 나는 당신을 나쁜 사람 쪽으로 분류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당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냥.

이런 내 주절거림은. 그냥.

그냥. 그랬다구요. 그때. 당신에게 정이 뚝 떨어졌을 때. 그냥. 그때.

잊어버려지지가 않고 자꾸만 생각이 나서요. 이렇게 한번 글로 쓰고 나면 좀 털어낼 수 있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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