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밤 May 08. 2019

서희의(Hee Soe) 지젤 Giselle

내가 본 최고의 지젤

어머니날(Mother's Day)이 다가오고 있는 이곳은 아직 화요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느낌은 벌써 주말이 된 것 같이 분위기가 들썩들썩하다.

어머니날이 무슨 그리 대수인가... 하고 살펴보니 내가 이곳에서 체감하는 휴일의 중요도로 봤을 때

땡스기빙, 크리스마스(뉴 이어), 독립기념일, 그리고 그다음으로 '어머니날'이 순서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버지 날(Father's Day)도 다음 달에 따로 있긴 한데 아버지 날은 어머니날에 비하면 존재감이 별로다.

어머니에게 선물과 카드를 보내야 하는 입장에선 사람에게도

혹은 내가 누군가의 어머니라서 카드와 선물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도

5월은 한국이든, 이 나라에서든

신경을 좀 써야 되는 달.




작년 어머니날 선물로 이 발레 공연에 혼자, 나 혼자 갔었다.

티켓은 아들 녀석이 구해줬다. 링컨센터. 꽤 시야가 좋은 자리로 잘 골라줬다. 발레리나 서희가 지젤로 나오는 공연으로 구해줬다. 

녀석은 내가 무용수 서희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젤'은 언제나 인기였다는 것, 그리고 그 인기 발레 지젤은 발레리나 '서희'가 독보적이라는 것도 나에게 수없이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날 선물인데 혼자 가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다음엔 같이 가서 보자는 말도 했다. 나와 함께 공연을 볼 수 없었던 남편도 내게 미안하다 했다. 나는 나 혼자서 이런 좋은 공연을 보게 되어 미안하다고 했다.

그날 지하철 5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6시쯤 일이 끝난 나는 서둘러 공연장으로 향했고

혼자 공연을 보러 가게 되어 처량한 마음 같은 건 전혀 없이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벼웠다. 그냥 좋았다.


뭘 먹고 들어가야 할까 그냥 들어가야 할까 갈등 중


내가 발레리나 서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보았던 '지젤'에서였다.

나와 남편, 그리고 지인 몇 사람과 같이 본 공연이었는데 출연진에 대해 전혀 모르고 갔던 나는 1막에서 시골처녀 지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부터 발레리나 서희에게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서희가 한국인인지 다른 인종의 여자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채 그냥 이 발레리나에게 빠져들었다. 중간 쉬는 시간에 브로셔를 읽어보고 나서야 오늘 지젤이 서희라는 이름의 발레리나이고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레리나 서희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하는 것은 지젤을 보는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서희는 지젤을 춤추고 있는 동안 정. 말. 진. 짜 지젤인 것 같이 보였다. 그녀의 지젤은 그날의 공연뿐만이 아니라 다른 해 다른 공연에서도 언제나 한결같이 정. 말. 진. 짜 지젤처럼 느껴졌다.



시골처녀 지젤일 땐 너무나도 천진난만 사랑스럽게 폴짝폴짝 점프하고 나비처럼 샤랄라 춤을 추었고

미치광이 지젤이 될 땐 단정하게 올림머리 했던 것을 순식간에 풀어헤치고 산발을 한 채 무대를 휘저었으며

참고로 나는 지젤을 볼 때 언제나 순식간에 봉두난발하게 되는 그 순간을 꽤 유심히 살핀다.
과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지젤의 머리가 산발이 될 수 있는가 신기했다. 다른 무용수들이 시선을 끄는 동안 어머니의 무릎에 쓰러져 있던 지젤의 머리를 어머니 역할의 배우가 잽싸게 매만지며 지젤을 쑥대머리로 만들어 준다

유령이 된 지젤이 원한에 사무친 처녀귀신(?)들에게서 자신의 사랑하는 남자를 지킬 땐 사력을 다해 용맹해 보이도록 춤을 춘다.




혼자서 공연을 보면 좋은 점이 많다. 안 좋은 점은 딱 한 가지가 있다.

딱 한 가지 안 좋은 점은 내가 본 좋은 것을 같이 본 '증인'이 없어서 아쉽다는 것. 그게 딱 한 가지 안 좋은 점이고

좋은 점 여러 가지는 나열하면 너무 길 정도로 많다. 

의외로 나처럼 발레를 혼자 보러 온 사람이 바로 내 옆자리에 있었다. 유럽식 액센트 심한 영어를 쓰는 여자였는데 공연이 끝나고 수차례 계속되는 커튼콜을 지켜보며 그냥 가벼운 인사차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굉장했지요? 오늘?

옆자리 여자가 나에게 대답했다.

어메이징. 그런데 오늘 지젤이 누군지 알아요? 대단한 걸. 지젤이 환생한 것 같아


신바람이 나서 설명을 해줬다.

서희의 지젤에 깊은 감명을 받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에 기뻤다. 그리고 서희가 한국 사람이라서 자랑스러웠다. 그제야.

뱅글뱅글 돌고 돌아 건물 밖으로 나가기

 

밖은 이렇게 밤이 되어 있었고 불빛은 아름다웠다.

함께 공연을 보지 못했지만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와 준 남편에게로 룰루랄라 발걸음 가볍게 뛰어갔다. 그리 재밌고 좋았냐며 흐뭇해했다.

낮보다 밤이 괜찮지


아들 녀석은 발레리나 서희가 지젤 공연을 하는 한, 일 년에 한 번은 꼭 볼 수 있게 표를 구해주겠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도 나에게 서희 공연을 보겠느냐고 물어봤었다.

하지만. 올해 서희는 '지젤'을 공연하지 않는다. 올해 ABT(American Ballet Theatre) 프로그램에 아예 지젤 자체가 없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다릴밖에.

작가의 이전글 단헐적 간식/간헐적 간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