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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Jun 22. 2019

기도시간에 눈 떠보기

궁금하면 한번 떠봐요

내가 이제껏 살면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횟수가 천 번이라고 가정했을 때

아마도 나는 그중 9백 번 정도는 눈을 뜨고 있었을 거다. 이건 사실이다. 부인하진 않겠다.

(누가 뭐라고 했냐. 부인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어렸을 때. 한.. 8살? 9살 때쯤. 어린이 예배를 일요일 아침 9시에 시작을 할 때면 강대상에 선 예배 인도자인

집사님이나 장로님들은 꼭 이렇게 말했다.

자~ 어린이 여러분. 다 같이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꼭 감으세요.
기도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어허~ 아직도 눈을 감지 않은 어린이가 보이네요. 자~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꼭 감은 채 생각했었다. 도대체 저 집사님 혹은 장로님은 아직도 눈을 감지 않은 어떤 어린이가 어떻게 보인다는 거지?(나는 그분들도 나처럼 눈을 감고 있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지 않은 아이는 과연 누구일까. 아 궁금해.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는 이런 순진한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고 

나는 성가대를 위해 피아노를 치거나 예배 전체를 위한 피아노 연주, 때에 따라, 필요에 따라 퍼스트 키보드 혹은 세컨드 키보드를 연주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피아노 반주를 하기로 정해진 예배 시간에는 온전히 완벽하게 기도 시간 내내 눈을 감고 있을 수 없다.

순서마다 준비해 놓아야 할 악보가 있고 그것을 미리 순서에 맞춰 준비를 해서 피아노 의자에 앉기는 하지만 

그래도 바람에 날아갈세라 실수로 건드려 넘어갈세라 신경을 바짝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제는 피아노 반주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악기 연주자들까지 (드럼, 기타, 건반, 오케스트라, 노래하는 사람 등등) 기도 시간에 기도를 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다 같이 기도하는 시간이든, 누군가 마이크 앞에서 대표로 기도를 하는 시간이든 요즘 추세(?)는 은은하게 반주를 깔아주고(?) 뭔가 잘 짜인 공연을 제공하듯 누군가의 큐 사인에 맞춰 볼륨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아주 복잡하게 되었다. 

이게 왜 이렇게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어림잡아 따져봐도 음악과 관련된 수 명~ 수 십 명이 기도 시간에 눈을 뜨고 있게 되는 형국.

다음 순서, 그다음 순서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분주하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고

방송실 엔지니어들, 스크린 자막 준비하는 사람들, 헌금 위원들, 성가대, 예배 진행요원들(이들은 특히 기도 시간에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규모가 좀 있는 교회에선 기도 시간에 남의 가방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을 색출하기 위해서 이 분들은 눈을 감고 기도할 수 없다. 세상 참....)



기도 시간에 눈을 감지 않는 사람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내 관점에서)

마이크를 잡고 '기도하자' 고 말하고, 소리 높이고, 울부짖는 일부(그러나 꽤 많은 수의) 전도사, 목사들이다. 

나는 이들을 '기도 기술자'라고 부르고 싶다. 

앞 서 이야기했던 요즘 기도시간 추세 (계속 건반을 연주해야 하는)때문에 피아노 반주자였던 나는 눈을 뜨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엔 없었다. 눈감고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이 못된다.

기도 기술자들은 마이크를 잡고 자꾸만 '다 같이 소리를 높여 기도하자'라고 말을 하고는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한 손으로는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댔다가 떼었다가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2층 방송실에 마이크 볼륨을 높이라는 손짓을 하고, 

아니면 연주자들에게 템포를 빠르게 하라 느리게 하라는 뜻의 손짓을 하거나

뒷 쪽 누군가를 급한 손짓으로 불러 무언가를 귓속말로 지시하거나 그런 일을 하면서 동시에 입은 쉴 새 없이 기도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적이 많았다.

언제였던가

이름 석자만 대면 대한민국 오천만 중 삼천만은 족히 알고 있을 굉장히 유명한 '기도 기술자'의 퍼포먼스를 아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속사포처럼 뭐라 뭐라 막 기도 같은 말을 하는 와중에 구석에 있는 연주자들에게 더 빠르게 연주하라고 한 손을 신경질적으로 휘젓고 있었다. 나는 그때 연주 세션이 아니었는데 하도 평생을 기도 시간에 눈을 뜨고 있어서 그랬던가 아니면 그냥 너무 어수선 시끌 북적해서 그랬나 눈을 뜨고 '기술자'의 

손짓 지시 상황을 보고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 있었다.

지금 연주 템포도 원래 악보의 2배 혹은 3배 이상 빠르게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것보다 더 빠르게 연주하라는 것인지 그 잔망스러운 손짓을 보자마자 열이 확 올랐다. 



기도 시간에. 뭔가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면.

감고 있는 눈을 좀 더 꽉 감고 "하나님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여쭤보거나

감고 있던 눈을 활짝 뜨고 동서남북을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진지하고 진실하게 눈을 감고 집중하면 안 들리던 것도 들리고

억지로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담백하게 둘러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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