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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Jul 01. 2019

정신력으로 식빵 물리치기

물리칠 수 있을까

저녁을 먹고

작은 식빵 한 덩이 반죽을 시작했다.

얼른 구워 잘 식혔다가 내일 남편의 도시락으로 싸주고 나도 먹으려고

바로 여기서부터 나의 정신적 어려움이 싹이 트고 시작된 것.

식구가 많지 않아 큰 덩어리의 빵은 먹다가 먹다가 버석하게 말라비틀어지기 일쑤고

더욱이 요즘처럼 습하고 더운 날씨엔 시퍼러둥둥 곰팡이가 필 가능성이 많아서(시판되는 빵과 달리 홈베이킹 빵은 사나흘이면 곰팡이 발생)

정말 작은 빵 한 덩어리 양만 반죽을 시작했다.

정말 작은 빵. 딱 한 덩어리.


나는 달콤한 과자류(제과) 만드는 것보다 발효 과정을 거치는 빵(제빵) 반죽을 훨씬 좋아한다.

정말 마음이 스산하고 혼란할 때 밀가루+물+소금+이스트를 눈대중으로 때려(?)넣고 손으로 조물조물 주물럭거리고 카운터탑 위에 팡팡팡 내려치고 주먹으로 퍽퍽 때리다 보면

무념무상.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빵 반죽을 손으로 하다가 깨달음도 얻고 복잡한 생각도 정리되고 하는 적이 종종 있다.

오늘은 정신이 복잡했던 건 아니고 그냥 내일 먹을 빵이 필요해서 반죽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아기 엉덩이처럼 보들보들 말캉말캉한 반죽을 접어 빵틀에 넣고

오븐 온도를 맞추고 적당히 부풀었을 때 오븐에 집어넣었다.완성 시간을 계산하여 타이머를 맞췄다.

어느새 집안에 퍼지는 구수~한 빵 냄새(오늘의 빵은 호밀빵)를 맡다 보니 빵이 다 구워졌다. 

이렇게.

각 잡힌 빵. 주사위 놀이를 해도 되겠어


내일을 위한 빵. 오늘 먹을 생각은 정말 없었다. 

그래서 애시당초 일부러 저녁을 먹고 시작했던 반죽이었다.(간헐적 단식은 계속된다 쭈욱.시행 3개월 2주 차)

하지만 틀에서 빵이 분리되는 순간. 하마터면 정신을 잃고 빵의 한가운데를 양손으로 나눠 잡고

쭈우욱 반으로 분리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닭고기 살결 같은 식빵의 속살을 확인할 뻔했다.


지금은 밤 10시 30분.

명목상이지만 여하튼 간헐적 단식 중

나이 반백살

저 빵의 용도는 내일을 위한 것. 지금 먹어버리면 안 됨.


지금 먹어야 맛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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