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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Jul 10. 2019

아기는 어디까지 기억할까

그 날, 그때, 그곳을 기억할까


내가 어린 내 아기를 키우고 있을 때

엄마는 나에게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 너는 00 이가 그런 말을 다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니?
얘, 00 이가 너무 어려서 기억하진 못할 거야.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실 때면 나는 눈을 토끼처럼 똥그랗게 뜨고서.

아니, 엄마. 내가 얘 엄마인데 얘가 내 말을 다 알아듣지 왜 못 알아들을까. 당연히 다 알아듣지.


솔직히 아기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지난날의 모든 일을 다 기억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세상의 모든 아기들에게 아주 어릴 적 그들의 부모들이 바로 옆에서 부부싸움을 했던 일이라든가 어른스럽지 못하게 서로 삐쭉거리고 이죽거린 것들을 세세히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도 너무 절망적이고 두려운 일일 것 같다.

애를 옆에 두고, 애가 듣고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 부부가 만들어 낸 실망스러운 장면들이라든가 성숙한 부모스럽지 못한 상황들이 이제껏 얼마나 많이 있었겠나.

그러니 아가들이 모~~ 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길 바래본다.


염치없는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아기들의 기억 속에 좋은 기억은 쏙쏙쏙 파고들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 후 첫 번째 나들이라든지, 처음 이유식을 한 숟가락 입에 넣었던 순간이라든지, 처음으로 바닷물에 발가락을 담갔던 순간 같은 걸 기억할 수 있다면. 그리고 오른손엔 아빠 왼손엔 엄마 손을 잡고 공원을 아장아장 걸었던 기억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기억을 32살이 되어서도 생생히 기억해 낼 수 있다면 고단한 32살의 어느 날이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여름의 한 복판, 7월이었지만 캐나다 국경과 맞닿아 있는 몬태나 주- 글래이시어 국립공원(Galcier National Park)은 추웠다.

이곳에서 그들을 만났다. 서른 살 안팎으로 보이는 부부(미국인)와 이제 갓 7개월이 되었다는 그들의 아기를.

잊을 수 없는 길 이름. Going to the Sun in Galcier Park


그 젊은 부부는 그들의 7개월 된 아기와 함께, 우리 부부는 15살 먹은 '우리 아기'와 함께 산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정상을 거의 눈앞에 두고 마지막 쉼터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중에 만났다.

그때 나는 거의 혼과 넋이 나간채 (얼마나 험난한 코스 인지도 모른 채 물병 하나 손에 들고 심지어 아쿠아슈즈를 신고 만년설이 쌓인 산을 올랐던 무지한 나였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나는 정말 한걸음도 더 뗄 수 없다고 울먹거리던 참이었다.


대학에서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그들은 이 산에 자주 왔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 방향, 여러 갈래 트레일 중 언제나 이 코스를 골라서 정상까지 오르는 일을 연중행사처럼 한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언제나 다짐을 했단다. 나중에 아기가 생겨도 꼭 아기를 데리고 같이 이 산을 오르자고.

바로 그날이 오늘이었고 그들의 7개월 아기는 부모와 함께 만년설이 쌓인 트래일에 서 있었다. 엄밀히 말해 아기는 6척 장신, 기골이 장대한 아빠의 등에 업혀 있었다. 산악인들이 사용하는 특수 제작된 아기띠인지 뭔지 잘 모르겠는데 뼈대는 철제로 되어 있고 비교적 아기가 안정적으로 쏙 파묻힐 수 있도록 디자인된 일종의 '지게'처럼 보였다. 아기가 흔들리거나 쑥 빠지지 않도록 어깨와 가슴 쪽으로 안전띠로 묶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여기까지 오는데 두 손, 두 발을 다 사용해서 거의 산짐승처럼 네발로 기다시피 해서 왔는데

저런 거대한 철제 '지게'에 어린 아기까지 메고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에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심지어 트레일 중간에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폭포를 머리에 수직으로 맞아야만 통과할 수 있는 구간이 있었는데 당최 그 아빠와 아기가 어떻게 거길 통과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다른 길이 있었는지 물어봤더니 그들도 그 폭포를 통과해서 왔다고 말했다.


그 부부는 우리를 보고 자신들의 15년 뒤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고

우리는 그 부부에게 우리의 15년 전을 보는 것 같다 말했다.

각자 마지막 정상을 향해 떠나기 전 그 젊은 부부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 아기가 이 날을 기억할까?


남편과 내가 이구동성으로 소리치다시피 대답했다.

당연하지! 니 아기는 이 날을 꼭 기억할 거야.
영혼에, 육신에 다 저장이 될 거야. 이 날의 추억이 아가에게 힘을 줄 거야.

그 날, 그때, 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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