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있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딱 1시간이라니. 이건 너무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라던데 어떻게 딱 1시간으로 여길 커버하겠는가. 하루 종일 이 안에서 할 것도 많고 볼 것도 많다. 시간과 돈과 여유가 있다면 일주일 동안 아침에 들어와 저녁에 나가고 싶을 지경이다. 너무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너무한 일' 은 종종 삶에 등장한다. 대부분 인생에 발생한 '너무한 일'은 받아들여야만 한다.
받아들이자. 시간이 없으니깐.
어쨌거나 본론으로 돌아가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앞에 딱 섰는데 스케줄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딱 1시간만 박물관에서 시간을 써야 한다는 '망할' 상황에 놓인다면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주어진 시간이 딱 1시간이라고 하니 나는 딱 3가지만 이 박물관 안에서 '관철' 시키겠다.
맨해튼 안의 거의 모든 박물관들의 입장료는 $25 정도이다. 요즘 환율이면 원화 3만 원 가까이 되겠다.
12세 이하 어린이들은 공짜, 학생증이 있으면 절반 가격, 콜럼비아 대학이나 뉴욕대 학생이면 공짜(좋겠다. 부럽다), 65세 이상이면 $17 대략 이렇다.
하루 종일 박물관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으면 입장료 $25가 전혀 아깝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딱 1시간밖에 없지 않은가.
1시간 안에 이 박물관에서 나가야 하는 것도 서러운데 입장료를 고스란히 다 내야 하는 것도 속이 쓰리다. 언젠가 아주 부~~~ 자가 되어 이렇게 쓰는 돈 $25도 전혀 아깝지 않고 인류의 문화 발전, 전 지구적 예술 발전을 위해 박물관에 기부도 팍팍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반백살에 이런 꿈을 가져도 되는지 모르겠다)
티켓 판매하는 사람에게 $10을 기부하겠다고 말하면 'Sure' 하면서 표를 준다.
이건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거주자와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인데 ID 검사를 하겠다고 그들의 웹사이트에는 나와 있지만 그것을 요구당한 적은 없다.
이런 제도를 악용해서 $1 (천이백 원)을 내고 들어가겠다는 사람들도 봤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땅 넓은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하기도 하고 여기서 산 지 오래된 몇몇 한인들이 '$1만 내고 들어가도 된다' 고 막 우기는데
$1을 내고 입장하려는 건 도둑놈 심보다.
이 글의 전제가 딱 1시간 에 방점이 찍혀 있어서 $10 도네이션을 제안한 것이지 말도 안 되는 $1 입장은 민망한 짓이다.
아무튼. 여기서 10분을 썼다.
내가 이 박물관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다.
아마도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들은 고흐의 다른 작품 '자화상'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언제나 자화상 앞에서는 기본 50명 이상은 서 있고 어떤 날은 그림이 안 보일 정도다.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자화상은 고흐의 수많은 자화상 중에서 밀짚모자 쓰고 있는 자화상이다.
바글바글 모여있는 그곳을 무심히 지나 갤러리 825번으로 가면 저 '첫걸음' 그림으로 갈 수 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세계 3대라는 말 자체가 좀 잔망스럽긴 하지만)라고 하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 박물관의 규모는 어마어마해서 갤러리 825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2층에 있는 방 중 하나인데 일단 2층으로 올라가서 군데군데 서 있는 직원에게 가는 방법을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친절한 그들의 도움을 받아 갤러리 825로 가면 생각보다 크지 않은 크기의 소박한 그림이 나오는데 바로 이것.
그림 속의 아기가 남자 아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매번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아기가 '남자애'라서.
밀레를 정신적 지주처럼 믿고 따랐던 고흐가 밀레의 그림을 모방해서 그린 그림인데 밀레의 원본 색체와 아주 많이 다르다. 내 얕은 상식으로 갖고 있던 고흐의 그림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아주 인상적인 그림.
이 그림 앞에 서 있으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착해지는 느낌을 매번 받는다.
갤러리 825를 찾고 이 그림을 감상하느라 25분이 더 흘렀다. 입장부터 여기까지 총 35분 사용.
1층으로 가자.
중앙홀을 기준으로 오른쪽이 고대 이집트 유물 전시관이다. 미라에서부터 볼 것들이 즐비하게 있지만 눈을 돌릴 틈이 없다. 왜냐하면 남은 시간이 25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쭈우욱 들어가면 한쪽 벽이 유리로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나고 동시에 이런 것이 보인다.
The Temple of Dendur in The Sackler Wing
The Temple of Dendur, a 1968 gift from Egypt to the United States in recognition of support given to save Egyptian monuments threatened by the rising waters of the Nile,
피곤한 다리를 조금 쉴 수 있는 공간. 기원전 15세기인가에 지어졌다는 사원을 도대체 어떻게 퍼왔는지 모르겠다. 기술이 좋다. 저기선 대부분 조용히 주변을 거닐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유독 그들(단체로 점퍼를 맞춰 입고 수십 명씩 몰려다니기 좋아하는 땅 넓은 나라분들)이 오면 순식간에 초토화가 된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단박에 시장통을 만들어 버린다.
기원전 15세기. 도대체 이 돌멩이는 나보다 몇 살이 많은 건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남아있던 25분은 금방 지나갈 것이다.
약속한 딱 1시간이 끝났으니 이젠 뮤지엄 밖으로 나올 시간이다.
수만 가지 볼 것들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는 것이 유쾌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문밖을 나서면 5th Avenue 가 코앞이고 뮤지엄 빌딩 뒤로 조금 걸어가면 Central Park 가 펼쳐져 있으니까 거기 가서
하하호호 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