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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Jul 24. 2019

오덴세? 거기가 어딘데?

안데르센. 안데르센 그 사람의 고향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동그랗게 말린 지구본, 납작한 세계지도 안에서 '덴마크'라는 나라가 어딘지 

손가락으로 콕 짚을 수도 없던 내가 여차저차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으로 와서 며칠을 보낸 후

겨우 이 동네가 조금 익숙해지려던 참에 다시 짐가방을 꾸려서 

'오덴세(Odense)'라는 도시로 떠나게 되었다. 

오덴세에서 하루를 지내게 되었고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숙소도 잡았다.




오덴세. 느낌이 좋다.

뭐랄까. 한글로 타이핑을 해놓아도 뭔가 예쁘다. 어떤 공주님 이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선 코펜하겐에서 오덴세로 가려면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야만 했다. 기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여행 일정에서 오덴세를 확인하고 오덴세는 뭐하는 곳이냐 물었던 내게 내 일행은 아주 짧게 대답해 주었다.

안데르센. 안데르센. 그 사람의 고향

음.... 그렇군.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던 우리는 일찌감치 서둘러 호텔 체크아웃을 했다. 역에 도착하니 기차 시간까지 약간 시간이 남아서 간단히 뭔가 먹기로 했다. 언제나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이곳은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맥도널드에 사람들(모두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었다.

우리는 당당히 맥도날드를 제치고 다른 걸 먹었다. 여기까지 와서 맥도날드라니 그건 아니지 싶었다.


기차는 편안했다. 뭐 특별히 좋을 것도, 거슬릴만한 것도 없었다.

다만 이런 게 눈에 띄었다.

등받이마다 비닐봉지. 다 먹은 사과는 여기에 버리라는 건가




오덴세. 안데르센의 고향.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 새끼, 잭과 콩나무, 벌거숭이 임금님, 헨젤과 그레텔 등등 익숙한 이야기들을 많이 쓴 작가. 우리가 흔히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정작 안데르센은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로 규정짓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릴 적 안데르센은 연극배우가 되려고 했었지만 그다지 재능이 없었고 배우가 되기엔 생김새나 목소리도 좀 별로였다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가 우정, 사랑, 구애, 연애를 하는 일에 서투르고 부자연스러웠다는 글도 어디선가 읽었다.

아버지는 구두수선공, 엄마는 부잣집 빨래나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집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은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구두 수선공이었던 아버지마저 일찍 세상을 뜨자 그의 어머니는 '구걸'을 해서 연명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이후 그의 이야기 '성냥팔이 소녀'에 나오는 그 '소녀'가 자신의 어머니를 묘사했을 것이라는 해설을 읽으니

성냥 사세요~ 제발 성냥 좀 사주세요~

소녀의 애절한 외침을 글로 쓸 때 동시에 자기 어머니를 떠올렸을 안데르센이 가엾게 느껴졌다. 

안데르센 생가 바로 옆 골목.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어쨌거나 안데르센은 어릴 때 이 도시 오덴세를 떠나 대부분의 그의 생을 코펜하겐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고향 덴마크에서보다 독일에서 더 유명했고.


관광객이 몰릴 시즌이 아니라서 도시는 한가했다. 평온했다.

일상을 살아가는 현지인들 사이에서 괜히 우리만 눈에 뜨이고 싶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잡은 컨셉(?)이기도 했다. '관광객처럼 관광하지 말자' 컨셉.

중국 관광객들의 힘. 중국어 안내판. '안도생'


저 안내판을 보자마자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어디선가 또 그들이 빨간색 잠바를 맞춰 입고 수십 명이 목청을 높이며 저 골목 끝에서 나타날 것만 같았다.  

카페인과 당을 보충할 장소를 찾고 싶었다.

 

Nelle's Coffee & wine




오덴세에서의 좋은 기억은 숙소였던 이 집에서 보낸 시간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단 하루였지만.

노부부만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우리에게 아래층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아들이 쓰던 공간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정갈했고 다정한 기분이 드는 공간이었다. 딱히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 느낌이었다.

내 방도 이랬으면
내 책상도 이랬으면


하물며!!

냉장고에 간단히 먹을 것을 넣어 놨으니 먹고 싶으면 알아서 꺼내 먹으라고 하셨다.

뭐 별 거 있겠나 하고 열어봤는데 주스 3가지 (오렌지, 사과, 토마토). 우유. 잼 3가지, 버터 스프레드

빵 두 가지. 냉동 팬케익, 미트볼, 베이컨, 계란, 심지어 컵라면까지. 

그래서 저녁 스케줄을 조금 바꿨다. 원래는 다시 다운타운으로 가서 밤거리도 걸어보고 로컬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장을 봐다가 저녁을 간단히 만들어 먹기로 했다.

다행히 걸어갈만한 거리에 마켓이 있었고 워낙 냉장고에 먹을 것이 많이 있으니 샐러드 채소와 소시지만 구입했다. 지갑과 셀폰만 달랑 들고 어슬렁 걸어서 마켓으로 가는 기분이 참 좋았다.


후다닥 차린 저녁치곤 괜찮군



오덴세는 수도 코펜하겐에서 서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아주 작은 도시였다.

안데르센. 그 이름 하나를 내세울 수밖에 없는 그런 도시. 

그렇지만 나는 오덴세에서 보낸 하루가 좋았다. 그냥 별 것 안 하고 어슬렁거리기만 했던 하루였는데 오히려 그게 좋았다. 느릿느릿 어슬렁어슬렁.

코펜하겐에서는 나름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고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도 많고 관광객끼리 서로 구경, 관찰하기도 하고 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피곤하기도 한 면이 있었는데

2시간을 서쪽으로 달려 나온 적막한 오덴세에서의 하루는 그런 종류의 피곤함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덤으로 얻은 지식

안데르센의 일생에 대해서. 

솔직히 우리 할아버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안데르센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흑.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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