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밤 Aug 22. 2019

내가 그런 걸 좀 잘 봐요

그녀는 정말 뭘 알았던 걸까


절대로 과속을 하면 안 되는 주택가 한적한 길(시속 25마일/40킬로)을 혼자 운전하다가

나도 모르게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날 때가 종종 있다. 종종. 누가 옆에 없길 다행이라고 매번 생각한다.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도 매일매일 다양하고 범위도 광범위하다. 시간과 공간도 많이 초월해서 넘나드는 것 같다. 이럴 때면 나는 나 자신이 심각하게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까 살짝 염려스럽기도 하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게

눈으로 뭔가 본다--> 뇌로 전달된다--> 연관된 무엇인가가 떠오른다--> 그때 그 일이 생각나면서 웃긴다/슬프다--> 피식~ 웃는다/코가 찡해진다

대략 이렇게 진행될 것 같은데 나 같은 경우엔 그냥 갑자기 툭! 하고 어디선가 에피소드 하나가 튀어나온다.

아니 도대체 어디에 이렇게 꽁꽁 숨어있다가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왔을까 싶게. 그래서 더더욱 피식~ 웃게 된다. 깔깔 껄껄 웃게 되질 않고 그냥 피시식.




어언 10년 전쯤에

나는 나보다 몇 살 어린 여자와 둘이 4-50분 정도 떨어진 시골 동네에 드라이브를 가서 달달한 머핀과 커피를 홀짝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 남편+아이- 는 주재원으로 미국에 파견을 나와 있는 거라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날짜가 이미 딱 정해져 있는 사람들이었고 나와 내 가족- 남편+아이- 도 남편의 공부가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던 시점이었다. 남편의 학업이 4분의 3 정도는 끝나가는 즈음이었다.

한국을 떠날 때부터 다시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살림살이들은 하나도 버리지 않았고 친정집에 방을 하나 점령(?)해서 레고 블록을 쌓듯 차곡차곡 짐 정리를 해놓고

돌아올 때까지 잘 간수해주슈


라며 떠났었다. 헷, 금방 돌아올 건데 뭐. 그렇게 생각했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아이가 당황하지 않게 하려고 아이의 학년에 맞춰 교과서와 문제집도 챙겨갔었다. 매일 저녁 '귀국대비 문제집 풀이' 도 시켰다. 철썩같은 믿음이 있었다. 귀국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녀와 머핀과 커피를 마실 때에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커피를 다 마셔갈 때쯤 그녀가 말했다. 나보다 몇 살 어렸던 그녀가.

그런데요. 이런 말 좀 어떻지 모르겠지만요 (아..... 불안하다. 이런 도입)
제가 그런 걸 좀 잘 봐요 (뭘?)
제가 보기엔.... 국외에서 좀 오래 사실 것 같아요 (엥???? 뭬야???)

아니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느냐 물어보긴 했던 것 같다. 그녀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그냥요. 왠지 그럴 것 같아요

아하하. @@씨 그럴리는 없어. 알잖아요. 우린 돌아갈 준비를 해놓고 떠나온 사람들이란 걸.

얼마 후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회사에서 정해준 날짜에 딱 맞춰 귀국했다.

헤어지며 '우리도 곧 따라갈게'라고 인사했었다.




그날 이후 10년째 귀국하지 않고 여기에 살고 있는 나는 뭔가. 우리는 아직도 귀국을 못했다.

그녀와의 저 대화가 갑자기 동네를 슬슬 운전하고 있는 중에 생각이 나서 헛웃음이 났다.

갑자기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인스타, 페이스북, 옛날 이메일, 옛날 전화번호, 옛날 싸이월드 등등- 그녀를 찾아낸 후 그때 나에게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다시 물어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 잡혔다.

뭔가 진짜 알고, 혹은 보고(오....... 뭔가 무섭) 그런 건지.

귀국:못 귀국=50:50이라 아무렇게나 골라 잡은 건지.


다음에 한국 방문 기회가 생기면 연락해서 한번 만나봐야겠다.

10년만큼 서로 늙어 있겠지만 달달한 머핀과 커피를 앞에 두고 그동안의 세월을 요약정리할 열정은

아직 남아 있을 것 같다. 언제나 다시 가보려나. 



Photo by David

작가의 이전글 나의 애완 콩나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