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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Aug 13. 2019

나의 애완 콩나물

사랑할 '애' + 희롱할 '완'

'애완동물'이라는 단어에 '애완'이라는 말 중 ''자가 희롱한다는 의미인 줄은 몰랐다. 지금 알았다.

아마도 요즘 '반려동물'이란 단어로 바뀐 이유가 저 '완' 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인가 보다... 하고 뒤늦은

깨달음을 얻었다.

여하튼. 글의 제목을 나의 애완 콩나물이라고 붙이고 글을 써 나가려다 보니

내가 기르고 있는 콩나물에게 내가 '희롱'을 가하고 있는 것 같아서 괜스레 '애완 콩나물'이라고 부른 것이 미안해질 지경이다. 나는 내 콩나물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고 물을 주며 아끼고 사랑하고 돌봐주는 중이지만

종당엔 내 애완 콩나물을 냠냠냠 뇸뇸뇸 먹어치울 것이다.

희롱 수준이 아니고 이건... 뭐랄까... 뭐랄까... 아무튼 그렇다. 난 콩나물을 먹기 위해서 키운다.

아끼고 사랑하고 돌봐주면서 콩나무로 키우려는 목적은 전혀 없다. 나는 찬거리에 목마른 중년 여자다.




천신만고 끝에 뉴저지 어느 한인마트에서 구한 콩나물콩. 부디 NGMO 이길.


바싹 마른 콩 두 스푼을 찬물에 퐁당 빠뜨려 3시간을 놔두면 오른쪽 사진처럼 통통하게 콩이 불어난다.

이것을 내 비장의 Kitchen Gadget- 콩나물시루에 넣어주고

 

햇볕이 들어가지 않도록 위를 뭔가로 덮어 주어야 함


5일간 물을 주기만 하면!!!

콩나물!!! 잭과 콩나물!!


반찬으로 거듭나 줄 나의 콩나물.

콩나물무침, 콩나물밥, 북어 콩나물국, 콩나물 잡채, 하다못해 라면 끓일 때 넣으면 국물이 갑자기 시원~해 지면서 품격이 다른 라면이 되더라. 이러니 냉장고에 콩나물 한 봉지쯤은 상비해 두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모르겠다.


몇 년 전. 나는 이런 콩나물 한 봉지를 얻으려면 무려 40분을 고속도로로 쌩쌩 달려서 운전을 해야만 했다.

생생하고 싱싱한 콩나물은 운이 억세게 좋은 날 구입할 수 있었고 대부분의 경우 콩나물의 노란 '대가리'가 푸르딩딩 색이 변해있거나 콩나물의 하얀 몸통은 시들시들 흐늘흐늘하기 일쑤였다.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제 8분만 운전하면 콩나물 한 봉지는 거뜬히 구입할 수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데

왜! 왜!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저 도자기로 만든 콩나물시루와 물받이를 한국에서 구입하고 기내 가방에 넣어 애지중지 모셔 오느라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승무원이나 다른 승객이 캐빈을 열고 닫을 때 내 기내 가방에 충격을 주어 혹여 도자기 시루가 깨지거나 금 가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했었다.

튼튼히 자라줄 콩나물 콩을 구하기 위해 들인 노력과 허공에 날린 내 돈은 또 어떻고 (한국에서 가져오고 싶었는데 종자는 외국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다)

검색과 주변 한인들의 추천을 받아서 구입한 콩들은 내게 '애완'의 기쁨을 주지 못하고 물에 불리던 도중 썩어 버리거나 싹이 트는가 싶더니만 급히 죽어버리거나 했다.

정 붙이고 마음 붙일 '애완물'이 필요했던 나에게 썩은 콩 악취만 가득 남겨 주는 몇 번의 실패를 안겨줬지만

이제는 '애완 콩나물' 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혹여 물이 부족해 목이 마를세라

햇볕을 보면 예쁜 노랑머리가 푸릇푸릇 색이 변할세라

부엌 카운터탑 위에서 너무 더울세라 아니면 에어컨 환풍구 옆에서 너무 추울세라

애지중지 '애완' 하다 보면 닷 세라는 짧은 기간에 만남과 헤어짐이 다 들어 있어서 그런가

나처럼 참을성 없는 사람에겐 딱 어울리는 행위 같다. 애완 콩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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