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밤 Sep 06. 2019

PB4WEGO

출발하기 전에 '쉬' 해

며칠째 미국에서 회자되는 작은 이슈.

'피비포위고/PB4WEGO- PEE BEFORE WE GO- 떠나기 전에 '쉬' 해'

뉴햄프셔에 사는 어떤 여자가 지난 15년 동안 자기 자동차 번호판으로 이렇게 쓰인 번호판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DMV(자동차 관련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관공서)에서 번호판을 교체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이유는 번호판 문구가 너무 offensive 하기 때문이라나. 이 여자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였고 지난 15년 동안 이 번호판과 세월을 함께 해온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서라도 이 번호판을 포기할 수 없었고 결국 번호판을 지켜냈다. 관공서를 상대로 이기다니 대단하다.




무심히 켜 둔 티브이에서 이 영상이 나왔다. 생방송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KUOA4hHRSc

관심을 끌기엔 방송이 최고지


나는 식사가 끝난 상을 치우느라 분주했고 옆에서 누군가는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고

늦더위에 에어컨이 쉴 새 없이 가동 중이었고 (우리 집 에어컨 소리는 정말 시끄럽다)

화장실 세면대 수리 때문에 켜 둔 공업용 환풍기가 돌아가고 있어서 티브이에서 나오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다만 곁눈으로 티브이 화면을 힐끗 보며 내가 생각했던 것은

1. 어떻게 저 복잡한 거리에, 이 시간에 차를 저런 식으로 세울 수 있었을까. 역시 방송국의 힘이란!

2. 화면에 예쁘게 나오려고 한껏 다리를 배배 꼬으셨군.

이었다. 집안에 있던 사람들 각자 하던 일로 돌아가고 티브이를 껐다.

방송의 자초지종은 몇 시간 뒤 야후에서 다른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키워본 엄마로서, 아니 이것은 엄마냐 아니냐 여자냐 남자냐를 떠나

어딘가 차를 타고 멀리 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누구든 할 수 있는 말이고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던가.

저 번호판 어느 부분이 과연 'offensive' 하게 느껴진다는 것인지.

그래서 상상을 해봤다. 

내가 운전을 하고 있다. 녹색 신호등을 기다리느라 앞을 주시하다가 앞 차 번호판을 봤더니

PB4WEGO 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면 그때 나는 저 번호판 때문에 불쾌해지고 분노가 솟아오르고 내가 위협을 받았다고 느껴질까 아니면 지겹고 나른하고 하품 나는 어느 오후에 방긋 웃을 수 있는 몇 초를 맛볼 수 있을까.

심지어 저 번호판에는 WEGO라고 되어있지 않은가! YOUGO라고 안 쓰고 말이다.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서도)

여하튼 뉴햄프셔에 사는 이 여자는 승리했고 15년간 사용하던 번호판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엄마의 '전투력'을 보고 이 집 아이들이 배운 것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소소한 일이 뉴햄프셔 지역 방송이나 신문에서 떠돌다가 사라지지 않고 내셔널 와이드 하게 널리 퍼져 며칠 동안이나 이슈화 되는 것을 보고 잠시 내 마음이 슬펐다.

내 나라에선 지금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고 있고 나라의 명운이 풍전등화 같은데 (내가 너무 감정이입이 심했나)

이 나라는 이런 게 며칠 동안 이슈화가 되다니. 


이 나라는 지금 태평성대인가 봐.


작가의 이전글 남탕에도 세신사가 있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